(시론)퇴직공직자 취업제한 제도, 실용주의로 풀 때다
지금이 바로 '관성적 규제' 실용으로 덜어낼 골든타임
2025-07-08 17:40:37 2025-07-08 17:40:37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제1회 방위산업의 날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한국은 세계 4대 방산 강국을 목표로 삼고 역대급 수출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방위산업의 원동력이 되는 '전문인력 수급은 제자리걸음이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경직된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제도가 버티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내건 '실용주의 국정운영' 기조는 바로 이런 문제에서 실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2년 173억 달러라는 역대급 방산 수출을 달성하면서 방산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일부 공직자의 과거 일탈을 이유로 전체 퇴직 공직자에게 취업을 제한하며 고급 인력을 사장시키고 있다. 일부 고위급 인사가 로비성 비리로 국민 신뢰를 잃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수십 년간 국가 안보와 산업 발전에 헌신한 전문가들까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 대통령이 강조해 온 '실용적 국정운영, 관행의 타파'가 필요한 이유다.
 
현행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은 국가 안보나 산업 발전 등 9가지 사유에 해당하면 예외적으로 취업 승인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직자윤리위원회나 기관장들이 '눈치'를 보느라 승인에 극도로 소극적이다. 결국 일부 전문가는 해외 기업으로 빠져나가거나 편법으로 2·3차 하청업체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는 결국 기술 유출 위험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로비 구조를 만들어내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한다.
 
미국의 사례는 다르다. 미국은 세계 최대 방산 수출국이면서도 일괄적 취업 제한 대신 개인의 이해충돌만 철저히 차단한다. 현직에서 담당했던 업무와 관련해 일정 기간 로비성 접촉만 금지하고, 그 외에는 전문성이 필요한 곳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열어둔다. 불법 행위는 철저히 개인 책임으로 다스리고, 산업 경쟁력은 유연하게 살리는 '실용적 모델'이다.
 
이재명정부가 표방한 실용주의는 '원칙은 지키되 현실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은 단죄하되, 변화된 산업 구조와 인력 수요에는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제도가 바로 그 시험대에 올라 있다.
 
지난 정부에서도 미국 사례를 참고해 제도를 현실화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실무 부처와 위원회는 여전히 손을 놓고 있다. 입법 보완이나 심사 매뉴얼 개선 논의도 답보 상태다. 이재명정부가 진정으로 '실용주의'를 실천하려면 관성적인 규제와 과잉 통제를 먼저 혁파해야 한다. '할 수 있음에도 안 하는' 비효율이야말로 가장 큰 비용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복잡한 제도가 아니다. 첫째,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로비성 접촉 금지 기간을 미국처럼 명확히 하고, 위반 시 엄벌에 처하면 된다. 둘째,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객관성과 일관성을 갖고 승인 여부를 심사할 수 있도록 독립적이고 투명한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현직에서 비리를 저지른 자는 개인연금 정지 등으로 철저히 책임을 묻고, 죄 없는 다수 전문가들은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방위산업뿐 아니라 원자력·에너지·첨단기술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분야는 전문성을 하루아침에 대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제한'으로 애써 키운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도록 방치하는 것이 국민 신뢰에 도움이 되는가? 실용주의 국정운영은 원칙을 지키되 현실과 맞지 않는 낡은 규제는 과감히 덜어내는 데서 시작된다.
 
이재명정부가 말로만 '실용주의'를 외칠 게 아니라면,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제도부터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 방산 전문가들이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국내 산업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고, 국민은 불법을 저지른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관성적 규제'를 실용으로 덜어낼 골든타임이다.
 
국민 신뢰와 산업 경쟁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 이것이야말로 실용주의 국정운영의 첫걸음이다. 이제는 '미국처럼 하면 안 되나?'라는 질문에 '우리도 이제 할 수 있다'는 답을 보여줘야 한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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