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버스정류장, '기후위기형 도시 인프라'로 거듭나야
폭염이 일상화된 '기후위기'…정류장은 '찜통지옥'
2025-08-04 08:26:43 2025-08-04 15:10:57
42.6°C를 기록한 영등포역 중앙버스전용차로 정류장의 온도. (사진=그린코리아포럼)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이제 '기후위기'라는 말이 낯설지 않습니다. 미증유의 폭염이 지속되면서 '이상기후'가 아닌 '일상기후'가 된 한국의 여름, 거리 위 시민들은 바짝 마른 아스팔트 위에서 한낮의 태양을 견딥니다. 대중교통 이용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서울의 버스정류장은 여전히 강한 햇빛에 노출된 공간이 많고, 중앙 버스전용차로 정류장은 그 중에서도 복사열이 집중되는 대표적인 사각지대입니다. 최근 시민단체 그린코리아포럼이 발표한 조사 결과는 '정류장 폭염'이라는 새로운 재난을 확인시켜줍니다. 
 
서울 버스정류장 온도 실측…"중앙차로 정류장 평균 39.1°C"
 
그린코리아포럼은 지난 7월 28일과 29일 이틀간 서울 시내 26개 버스정류장에서 온도를 측정하고, 그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조사 대상은 중앙 버스전용차로 정류장 13개소, 일반 차로 정류장 9개소, 에어컨 설치 정류장 1개소, 스마트 쉘터 정류장 3개소였습니다. 
 
이 중 폭염에 가장 취약한 곳은 중앙 버스전용차로 정류장이었습니다. 평균 온도는 39.1°C로, 같은 시각 기상청 발표 평균 기온 35.7°C보다 무려 3.4°C 높았습니다. 특히 영등포역 중앙 차로 정류장은 42.6°C를 기록, 지역 발표 온도 35.4°C보다 7.2°C나 높았습니다. 신용산역 중앙차로 정류장도 41.0°C로, 6.3°C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처럼 기온보다 현장 체감온도가 크게 높은 이유는 아스팔트 복사열과 콘크리트 벽면 반사열 때문입니다. 도로 중앙에 노출된 구조가 시민의 몸에 더 많은 열을 쏟아붓는 것입니다. 
 
일반 차로 정류장 역시 기온보다 평균 1.8°C 높은 37.4°C로 측정됐습니다. 합정역 홀트아동복지회 정류장은 37.1°C(지역 기온 34.6°C), 사당역 4번 출구는 36.6°C(기온 34.5°C)로 나타났습니다. 
 
스마트 쉘터, 시민을 구하다…주변 온도보다 최대 6.6°C 낮은 '피난처'
 
에어컨이 설치된 정류장과 스마트 쉘터 내부는 주변 온도보다 낮은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강남역 삼성전자 에어컨 설치 정류장의 경우, 측정 온도가 33.8°C로 기상청 발표 지역 온도 35.7°C보다 1.9°C 낮았습니다. 스마트 쉘터 정류장의 평균 측정 온도는 30.8°C로, 주변 지역 온도 36.0°C보다 무려 5.2°C나 낮았습니다. 특히 세검정초등학교 앞 스마트 쉘터는 28.9°C를 기록, 6.6°C나 시원한 환경을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도심 내 쉘터 정류장의 확대가 단순한 편의 제공이 아니라 시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안전 인프라임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그린코리아포럼은 "기후 비상 사태는 이미 현실이며, 그 최전선에 시민이 서 있다. 특히 고령자, 노약자 등 취약계층은 무방비 상태로 정류장 폭염에 노출되며, 이는 단순 불편을 넘어 '건강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라며 △에어컨 설치 및 스마트 쉘터 확대 △정류장 그늘막 및 그린 루프 조성 △정기적 온도 모니터링과 정보 공개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정류장을 '대중교통 대기 공간'이 아닌 '기후재난 대응 시설'로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에너지 자립형 냉각 정류장'부터 '그린 루프'까지…세계 도시들의 정류장 혁신
 
전 세계 곳곳에서 도심 폭염과 열섬현상을 막기 위한 친환경 정류장 실험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뜨거운 도시 세비야는 태양광을 이용한 자가 냉각 시스템을 정류장에 도입했고, 미국 보스턴은 정류장 지붕에 식물을 심는 '그린 루프'를 설치해 도심의 온도를 낮추고 있습니다. 이른바 '기후위기 대응형 버스정류장'이 도시 곳곳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혁신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자치정부와 세비야시는 지난해 기후변화 적응 전략의 일환으로 '자가 냉각 태양광 버스정류장(Self-Cooled Solar Bus Shelter)' 시범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이 정류장은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이 전력을 생산하고, 센서가 작동하면 지하의 물탱크에 저장된 물을 순환시켜 내부 온도를 낮추는 방식이입니다. 정류장에 사람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시스템이 작동해 주변 온도보다 최대 10~12도 낮은 환경을 제공합니다. 세비야시는 시내 주요 노선 5곳에 시범 정류장을 설치했습니다. 스페인의 언론 매체들은 "이 정류장이 기후변화 적응형 도시 설계의 선도적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미국 보스턴시는 'Cool Commutes(시원한 통근)' 전략의 일환으로 2024년 8월, MBTA(매사추세츠만 교통청) 28번 노선을 따라 30개 버스정류장 지붕에 '그린 루프'를 설치했습니다. 이 녹색 지붕에는 세덤(sedum) 등 가뭄에 강한 식물이 심어졌으며, 유지 관리가 용이하고 열 차단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스턴시는 특히 28번 노선이 보스턴 내 저소득층 거주 비율이 높은 지역을 지나는 주요 노선이어서 "기후 불평등 완화를 위한 환경 정의 실현의 일환"이라고 설명합니다. 보스턴시는 이 그린 루프 정류장을 통해 △도심 열섬현상 완화 △빗물 흡수 및 도시 배수 부담 경감 △곤충 서식지 제공에 따른 생물다양성 증진 △공기질 개선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보스턴시의 '그린 루프' 설치 과정. (사진=City of Boston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이렇게 정류장 상판에 식물을 심는 '그린 루프'는 유럽과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확산되어 왔습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는 2019년부터 '꿀벌정류장(Bee Stops)'이라는 이름으로 300개 이상의 버스정류장에 다육식물과 풀을 심었습니다. 이 지붕들은 단순한 냉각 효과뿐 아니라 벌과 나비의 서식처로 기능하며, 도시 생물다양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HeatReadyPHX' 전략을 통해 2020년대 중반까지 도시 전체 그늘률을 25%로 끌어올리겠다는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 2013년부터 '쿨 오스틴(Cool Austin)' 전략을 통해 도시 숲 조성 등을 꾸준히 벌여 온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등 '더운 도시'들은 '그늘 도시(shade city)'를 추구해 왔습니다. 버스정류장 주변에 키 큰 나무와 풀을 심어 복사열을 차단하고, 지표면 온도를 완화하는 자연 기반 해결책을 도입했습니다. 
 
기후위기는 이미 현실의 상황입니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그 몇 분의 시간을 바꿔야, 도시 전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서울의 버스정류장도 이제 ‘기후위기형 도시 인프라’로 거듭나야 합니다. 재난 대응력과 기후 적응력을 갖춘 '기다릴 만한' 정류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지금이 바로 그 전환의 기로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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