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정의 중독, 정의를 좀먹는 독
2025-06-12 09:32:18 2025-06-12 16:45:51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정의 중독을 벗어나는 출발점(사진=게티이미지)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우리 사회에서 ‘정의’라는 말처럼 사랑받는 말도 드뭅니다. 정의로운 사회, 정의로운 분노, 정의로운 행동.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정의’는 더 이상 우리 사회를 단단하게 지탱하는 가치가 아닌 분열과 혐오를 낳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정의 중독’ 현상이 팽배합니다.
 
‘정의 중독’이란 자신만이 옳다는 믿음에 깊이 빠져들어 끊임없이 도덕적 분노를 찾고, 표현하며, 이를 통해 심리적 쾌감을 얻는 상태를 말합니다. 정의감은 원래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중요한 감정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중독적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정의는 감정의 도구가 되고, 타인에 대한 공격과 자신에 대한 도취로 이어집니다. 문제는 이 정의감이 공동체의 건강한 방향성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알고리즘이 부추기는 ‘정의 중독’ 현상
 
정의 중독을 증폭시키는 여러 기제를 떠올릴 수 있지만 디지털 알고리즘의 힘은 위력적입니다. SNS와 포털의 추천 시스템은 사용자의 관심과 반응을 분석하여 콘텐츠를 맞춤 제공합니다. 정의 중독에 빠진 이들은 도덕적 판단과 분노를 유발하는 자극적인 콘텐츠에 더 오래 머무르고, 더 많이 ‘좋아요’를 누르며, 더 자주 공유합니다.알고리즘은 그 행동 패턴을 학습해 비슷한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결과 이용자는 점점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이야기만 접하게 되며, 그 안에서 자신과 다른 의견은 ‘악’으로 규정되고, 타인을 향한 혐오와 공격은 정당한 행동처럼 인식됩니다. 알고리즘은 정의 중독의 연료이자 가속기가 되어 개인의 감정을 강화하고 집단적 의식으로 확산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성이 마비된 의식은 광기에 불과합니다. 나라 전체를 통합하고 아울러야 할 대통령이 특정 이념을 표방하는 유튜브 영상들에 심취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왜곡된 정의가 낳는 사회적 해악
 
정의 중독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심각한 사회적 분열입니다. 우리는 점점 더 쉽게 ‘우리’와 ‘그들’을 나누고, ‘옳은 나’와 ‘틀린 너’를 구분합니다. 그 과정에서 대화와 이해는 사라지고, 남는 것은 혐오와 낙인뿐입니다. SNS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정의’의 이름으로 개인이 집단 공격을 당합니다. 정의는 감정적 무기로 전락하고, 공론장은 간 데 없고 격렬한 싸움터로 바뀌어갑니다. 
 
이러한 정의의 왜곡은 사회를 병들게 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마저 뒤흔듭니다. 공동체의 규범이 ‘정치적 흥분’에 휘둘리면 사회는 점차 불안정해지고 냉소와 피로에 빠집니다.
 
샹탈 무프의 ‘대립적 민주주의’가 말하는 건강한 갈등
 
정치 영역에서 정의 중독 현상은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습니다. 복잡한 사회 문제는 감정적 이분법에 갇혀 단순화되고, 정치인은 ‘정의의 수호자’라는 역할을 자처하며 반대편을 악마화합니다. 특정 정당이나 인물은 단순한 경쟁자가 아닌 도덕적으로 파산한 존재, ‘국민의 적’으로 규정되며 타협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 이전 여당과 거대 야당의 모습은 이런 면에서 ‘일란성 쌍둥이’였습니다. 그 결과 사회는 더욱 극단적으로 쪼개지고, 진정한 의미의 정의는 사라지며, ‘정의 감정’만 남게 됩니다. 
 
이처럼 정치가 ‘정의 중독’에 휘말릴 때, 우리가 참고해야 할 이론적 대안이 있습니다. 벨기에 출신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정치철학자 샹탈 무프(Chantal Mouffe)는 On the Political에서 정치란 본질적으로 갈등과 대립의 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정치에서 갈등을 억누르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건강한 민주주의의 에너지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녀는 이를 ‘대립적 민주주의(Agonistic Democracy)’라고 부릅니다. 이 모델은 서로 다른 입장과 감정, 정치적 열정이 공유된 규칙과 틀 안에서 충돌하고 조율되는 구조입니다. 상대를 악마가 아니라 ‘경쟁 가능한 타자’로 인정하고 정당한 갈등이 공개적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공론장을 제도화하는 정치입니다. 
 
그녀는 기존의 합리주의적 민주주의, 즉 합의와 중립만을 강조하는 접근은 현실의 열정과 충돌을 억압함으로써 결국 권위주의의 문을 열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대신 갈등을 드러내되 폭력으로 치닫지 않도록 틀을 짜고, 다원주의 안에서 허용 가능한 한계를 설정하되 이견을 제도화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진정한 심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프의 입장은 서로 제어하고 공존하는 방식으로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합니다. 
 
정치와 정신건강은 무관하지 않다
 
이번 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왜 이리 높나요”라고 질문을 했다는 소식이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높은 자살률에 깊은 관심을 표명한 것 자체가 반가운 소식입니다. 자살률과 관련해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난 2009년, 2018년, 2023년 등 자살률이 급증한 시기들은 공통적으로 정의 중독이 횡행하고 정치적 긴장과 분열이 고조된 시점이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정치적 갈등이 심화된 시기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료 환자 수가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왔습니다. 높은 자살률을 낮추려면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한 대안임을 알 수 있습니다.
 
통합을 향한 첫걸음은 자신의 정의를 되돌아보는 일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될 것을 천명하면서 모든 국민을 섬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통합은 정치가 회피할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며, 한국 사회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서로를 악으로 규정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되살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정의감이 아니라, 더 깊은 성찰과 더 넓은 공감입니다. 정의는 도취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도덕적 도구입니다. 특히 정의를 외치는 이들이 먼저 자신의 분노는 정당한가, 중독된 감정의 반복인가를 되물어야 합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우리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라는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의 말처럼, 통합의 첫걸음은 상대방에도 옳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있습니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타인을 부정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정의가 아닙니다. 이재명정부와 거대 여당이 윤석열정권의 실패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교훈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국민통합은 선언이 아닌 정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용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챗GPT가 만든 알고리즘의 폐해 이미지.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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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입니다 ~ 진정한 궄민통합! 기대되네요

2025-06-12 10:55 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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