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점포 안돼"…당국, 은행 점포 폐쇄 가이드라인 손질
2025-06-13 06:00:00 2025-06-13 06: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은행권 점포 폐쇄 가이드라인 손질에 나선 금융당국이 디지털·무인 점포를 대체점포로 활용하는 방안에 제동을 걸 전망입니다. 가이드라인에서는 금융접근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점포 폐쇄 이후 대체수단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은행들이 인건비 부담이 크지 않은 특화점포를 선호하면서 고령층 등 취약층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은행들 비용절감 '혈안'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고령층 등 금융 취약계층의 편의를 위해 은행권 점포 폐쇄 가이드라인 개선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은행권 지점 통폐합에 제동을 거는 내용을 중심으로 손질 중이며, 올 하반기 '은행 대리업' 도입 세부 방안을 내놓는 시기에 맞춰 발표할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이 점포 폐쇄 이후 대체수단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인건비 등 비용을 절감하는 데 우선하고 있다"며 "취약층이 이용하기 어려운 디지털·무인점포를 대체수단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점포 폐쇄 관련 사전·사후 영향 평가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 2023년 은행 점포 통폐합에 따른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동 절차를 마련한 바 있습니다. 점포 문을 닫기 전 외부 전문가 평가, 주민 의견 청취 등의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점포 폐쇄 결정이 날 경우 내점 고객수나 고령층 비율 등을 감안해 금융소비자의 불편이 큰 경우 소규모 점포나 공동 점포를 대체수단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은행들이 가이드라인의 예외 조항이나 우회 근거를 악용해 무분별하게 점포를 줄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STM(고기능무인자동화기기)을 활용하는 무인점포를 대체점포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STM은 영상통화, 신분증 스캔 등 본인인증을 거쳐 예·적금 신규 가입, 카드 발급, 인터넷·모바일뱅킹 가입 등 창구 업무의 80% 이상 수행이 가능합니다. 은행입장에서는 STM은 설치 비용이 들긴 하지만 인건비를 절감하면서 고기능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 운영 효율성이 높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자동화기기 중 화상단말기 설치 대수는 631대로, 2020년(101대)과 비교하면 6배 이상 늘었습니다.
 
하지만 고령층이나 스마트폰 이용이 익숙하지 않은 금융 취약계층에게는 STM 등 화상단말기는 장벽입니다. 이들에게는 여전히 대면 서비스 선호도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대체 점포가 디지털· 무인 중심의 특화점포에 치중된 것입니다. 대체점포가 기존 오프라인 점포의 영업을 100% 대체하지도 못합니다.
 
은행들이 점포 폐쇄의 대체수단으로 디지털·무인 점포를 활용하면서 금융접근성 훼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 한 시중은행의 디지털 점포에서 고객이 은행 창구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은행들은 '반경 1km 안에 있는 점포를 통폐합하는 경우 외부 전문가 평가, 주민 의견 청취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악용하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은행들이 예외조항을 악용해 통폐합을 하고 있다고 보고, 거리 기준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은행들 "점포 감출 불가피"
 
은행권에선 사실상 점포 운영 합리화를 위한 통로 차단 조치라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되고 은행 창구를 직접 방문하는 고객이 줄자 여러 점포를 하나로 합치거나 폐쇄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폐쇄 전 영향평가, 지역 주민 의견 청취, 대체 수단 마련, 사전 통지, 민원 예방 등 현 절차를 모두 지키려면 당분간 점포 폐쇄는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은행의 국내 점포수는 지난 1분기 기준 3766개로, 지난해 4분기 3842개 대비 76개 감소했습니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각각 28개, 우리은행이 25개 점포가 줄었습니다. 하나은행의 경우 4개 점포가 늘었습니다. 은행의 점포 감소세가 이어진 가운데 감소 폭은 더욱 확대됐습니다. 지난해 3분기(3894개)에서 4분기 말까지 52개가 줄었던 것을 고려하면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4대 은행을 포함한 전체 국내 은행의 점포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실제 2018년 말 6771개였던 은행 점포 수는 지난해 말 5792개로 줄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1년에 150개가 넘는 점포가 없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자동화기기 또한 빠르게 줄었습니다. 국내 은행의 ATM 수는 2019년 말 3만4737대에서 지난해 말 2만6680대로 줄었습니다. 연평균 1600여 대씩 줄었다는 얘기입니다.
 
매년 점포가 빠르게 사라지면서 '금융 접근성'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소비자의 이동 거리가 20㎞ 이상인 상위 지역 30곳 중 26곳이 만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화 지역으로 나타났습니다. 금융 접근성 해소가 향후 정책 이슈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금융산업노동조합은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 캠프에 점포 폐쇄 절차 강화를 정책 요구 사항으로 전달했습니다. 
 
은행들의 점포가 빠르게 사라지면서 고령층 등 금융취약층의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한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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