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13일 내란죄 재판 증인으로 출석해 윤석열씨가 12·3 비상계엄을 모의한 정황과 관련된 자신의 군검찰 진술을 모두 뒤집었습니다. 대부분 공소사실에 대해서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을 비롯해 방첩사 소속 군인들이 여 전 사령관과 계엄의 관련성을 진술하는 만큼 죄를 피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중앙지역군사법원은 13일 여 전 사령관과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의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 공판기일을 진행했습니다. 지난달 30일부터 계엄군 핵심 인사들의 대질신문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날은 여 전 사령관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습니다. 여 전 사령관은 앞서 지난 1월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된 윤씨의 탄핵심판에서는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대부분 진술을 거부했습니다. 여 전 사령관이 내란사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 이날이 처음입니다.
하지만 여 전 사령관은 군검찰에서 진술한 내용 대부분을 부인했습니다. 특히 여 전 사령관은 윤씨가 지난해 8월 대통령 관저에서 식사하다가 인물품평회를 하며 ‘비상대권’, ‘비상조치권’을 언급한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여 전 사령관은 지난해 8월 관저 식사와 관련해 “주로 간첩 수사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군검찰이 여 전 사령관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제시하며 “대통령의 네 가지 상황인식(사법체계, 형소법. 방탄국회. 재판지연)을 말하며 정치인과 민주노총 관련자들을 비상조치권으로 조치해야 한다고 진술하지 않았느냐”고 되묻자 “당시 어떤 취지로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1일과 11월9일 만찬에서 윤씨가 체포대상자들을 언급하며 비상대권으로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진술도 바꿨습니다. 여 전 사령관은 “대통령이 말한 것 자체를 부인하진 않는다”면서도 “다른 사령관들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 그런 말 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여 전 사령관 증언은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여 전 사령관은 “대통령이 제게 말한 취지는 맞는데 업무상 관계 있는 수사 이야기를 할 때 말했을 것”이라고 증언했습다. 이에 검찰이 “업무상 관계인데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왜 나오냐”고 되묻자 그는 “제가 수사업무를 하는 사람이니까 이 후보 재판이 어떻게 되는가 지나가는 말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여 전 사령관은 주장의 한계에 부딪치자 군검찰이 물증 없이 논리적 추정으로 유죄를 주장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군검찰은 다른 사령관들과 하급자들의 진술을 종합해서 신문하는 것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여 전 사령관이 계엄사령관이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과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경력 증원을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말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여 전 사령관은 “(선관위에 방첩사) 병력 출동시간이 12월4일 새벽 1시”라며 “상식적으로 12월3일 오후 10시에 조 청장에게 (전화로) 계엄군이 선관위에 간다고 어떻게 말하겠냐”고 했습니다. 이에 군검찰이 “정성욱 방첩사 1처장 진술에 따르더라도 증인이 ‘경찰이 선관위를 확보하면 그때 방첩사가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으니 사전적·예방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지적하자 여 전 사령관은 “물증이 없다. 논리적 추정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군검찰은 “관련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질문하는 것”이라고 대응했습니다.
여 전 사령관은 사전에 비상계엄을 준비하지 않았으며, 비상계엄 선포 뒤엔 김 전 장관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움직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여 전 사령관 지시에 따라 체포조를 꾸리고, 선관위에 들어갔다는 하급자들의 진술도 모두 부인했습니다.
윤씨 측은 자신의 내란수괴 혐의 재판에서 여 전 사령관 등 직접 지시를 받은 사람부터 증인으로 부르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윤씨와의 연결고리를 부인하고 있는 이들입니다. 하지만 곽 전 사령관과 방첩사 소속 군인들은 여 전 사령관 등의 진술과 반대되는 진술을 하는 만큼 그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군검찰은 이날 여 전 사령관이 증거를 인멸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군검찰은 “증인은 배정효 중령(방첩사 지휘협력과장)을 사령관실로 불러 비서실 근무자들도 조사받을 수 있으니 자료를 잘 지우라고 말한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여 전 사령관은 “우리도 수사하는데 거짓말로 감추는 게 가능할 것 같으냐”며 “지금도 개인 신념이 '거짓말 5분만 하면 들통난다'라는 것”이라고 발끈했습니다.
이에 군검찰은 “증언을 믿기 어렵다”며 “배 중령은 사령관 독대가 처음이었다며 비서실 인원들이 배 중령으로부터 전해 듣고 상당 부분 자료를 지웠다고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여 전 사령관은 “증거은닉은 공소장에 없는 내용”이라고 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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