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았지만, 그의 메시지는 엇박자가 나고 있습니다. "관세로 자동차 가격이 올라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한 달도 안 돼 자동차 관세를 완화한다는 방침인데요.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발언이 아닌 데다, '철회'가 아닌 만큼 한국에 청신호로 작용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한국이 관세 문제와 방위비분담금 등 안보 문제를 연계한 '패키지 딜'(일괄 타결) 압박을 받을 가능성도 여전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자동차 부품, '관세율 조정'에 '중복관세 철회' 시사
<월스트리트저널(WSJ)>와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 관세 완화 조치를 29일(현지시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취임 100일 기념행사 전 발표합니다.
<WSJ>은 이 문제에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25%로 예고됐던 수입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율 인하 △미국에서 제조한 자동차 가격의 3.75%까지 부품 관세 환급 △자동차 부품에 대한 철강·알루미늄 관세 시행 제외 등을 할 걸로 내다봤습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일부로 수입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내달 3일부터는 해당 관세를 자동차 부품으로 확대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이 경우 부품의 철강·알루미늄 함량을 기준으로 25%의 관세를 부과하게 되는데요. 특정 자동차 부품에 철강·알루미늄 함량이 50%라면, 전체 가격의 절반에 대해서만 25% 관세를 부과하는 식이었습니다. 계산이 복잡해 비용 증가분을 예측하기 어려웠는데, 불확실성이 일정 부분 해소됐다는 평가입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도 성명을 내고 "이번 합의는 국내 생산 기업을 대우하고, 미국 투자와 국내 제조를 늘리겠다는 약속을 밝힌 기업에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이라며 "대통령 통상 정책의 위대한 승리"라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관세 완화 조치를 발표하며 비슷한 메시지를 낼 가능성이 큽니다. 미시간주는 제네럴모터스(GM) 등 미국 자동차 공장이 몰려있어 자동차 관세로 인한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지역이자, 지난 대선 당시 경합주로서 트럼프 당선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실상은 강력한 업계 반발에 밀려 한발 물러선 것이지만, 이를 취임 100일 성과로 포장하며 표밭에서 지지층 결집에 나서는 겁니다. 한국으로선 호재인데요. 통상 완성차 1대 생산에 1t의 자동차용 강판과 알루미늄 200㎏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차와 기아의 경우, 미국 정부의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부과로 원자잿값 부담이 1000억원(현대차 611억원·기아 484억원) 가까이 늘어나는 상황이었습니다. 미 앨라배마와 조지아에 현대제철 공장이 있긴 하지만, 주로 한국에서 생산된 강판을 차량에 맞게 가공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문제는 자동차 부품입니다. 현대차·기아는 원재료 매입 비중만 놓고 본다면 자동차 부품이 전체의 98%에 달합니다. 자동차 부품 환급은 점진적으로 폐지되는 수순이라, 현대차·기아 입장에선 중장기적으로 부품 현지화 비율을 높이는 전략이 병행돼야 부담 완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한국 자동차부품이 미·중 무역갈등을 틈타 중국 자동차부품을 대체하면서 일부 반사이익을 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북미에 공장이 없는 영세 부품 업체에는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 기업 1만 5239개 중 4인 미만 사업체가 50.3%, 매출액 5억 미만인 곳이 27.6%(2022년 기준)입니다.
현재로선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발언에서 실제로 낮은 관세율이 부과되고, 구체적 품목이 확정될지가 관건입니다. 지난 3월 수입 자동차·부품 관세에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했을 당시 관련 포고문엔 엔진, 변속기, 파워트레인 등 '주요 자동차 부품'이라고만 명시돼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로 인한 자동차 가격 상승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며 "관세는 영구적으로 부과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0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디트로이트 이코노믹 클럽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주한미군 또 저격한 트럼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공개된 시사주간지 디애틀랜틱과의 취임 100일 기념 인터뷰에선 "주한미군에 엄청난 비용이 들고 있다"며 한국을 또다시 언급했습니다.
그는 '한국·대만·일본이 미국의 동맹국 대우에 의문을 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도 "다른 나라에 미안할 필요가 없다. 그런 나라는 미국의 희생으로 번영했다"며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인상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 "앞으로 3∼4주에 안에 관세 협상을 끝낼 것"이라며 "군대를 위한 지급은 '별도 항목'으로 둘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주한미군 방위비는 현재 한국과 진행 중인 무역 협상과는 별도로 다루겠다는 의미인데, 현실적으로 한국은 새 정부 출범 이후에야 협상 타결이 가능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조치'가 종료되는 7월 초까지 '패키지 합의'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패키지 합의에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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