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인류학과 교수인 질 프루에츠와 유타대의 니콜 헤어조그 연구원은 2017년 재밌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매년 건기에 산불이 나는 세네갈 퐁골리의 침팬지 무리를 장기 관찰했다.
놀랍게도 침팬지는 산불의 유형, 그리고 불길의 이동 방향과 속도를 예측하고 행동했다. 불길이 높이 솟을 때도 놀랄 만큼 침착함을 유지했다. 산불이 휩쓸고 난 뒤에는 잿더미를 뒤져 잔불에 익은 아프젤리아나무 열매를 찾아 먹었다. 생으로 먹지 않던 먹이였다. 침팬지가 퐁골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였다.
두 학자가 퐁골리 침팬지를 연구한 이유는 인간이 불을 대면한 최초의 순간을 알고 싶어서였다. 인류가 처음 불을 다루게 된 계기는 아마도 산불이었을 것이다. 자연발화된 산불을 보면서 불이라는 현상을 이해했을 것이고, 잔불에 다가가 불을 경험하고 활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2021년 6월29일, 산불은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주의 소도시 라이튼을 덮쳐 주택을 파괴하고 도시의 90%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북위 50도에 위치한 서늘한 지역인데도, 전날 49.6도라는 믿기지 않는 기온을 기록한 터였다. 산불의 원인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유력한 추측은 달리는 열차 바퀴가 달궈진 철로와 마찰을 일으키며 튄 불꽃이 거침없이 커지며 최대 시속 71㎞의 바람을 타고 시간당 10~20㎞씩 번졌다는 거였다.
폭격을 맞은 듯 문명이 전소된 모습은 캐나다인들에게 충격을 던졌다. 그 무엇도 전과 같지 않았다.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불, 시커멓게 타 죽은 코알라로 기억되는 2019~2020년 호주 산불 같은 ‘메가파이어(megafire)’가 자신의 일상으로 진격할 거라는 공포를 느꼈다. 지난 3월 경북 산불 현장을 보러 간 나의 심상도 비슷했다. 헬기는 성난 ‘불의 거인’ 앞을 파리처럼 날아다니는 장난감 같았다. 갑작스럽고 난폭하고 압도적인 초대형 산불의 기세 앞에서 나는 왜소하고 무력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 관리한다는 모든 약속과 믿음이 헛되어 보였다.
메가파이어는 피해 면적 100㎢ 이상의 초대형 산불을 가리킨다. 경북 산불도 의성에서 시작해 동해와 맞닿는 영덕까지 가서야 불이 꺼졌다. 451㎢가 피해를 봤다. 우리나라도 메가파이어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려면, 세 단계의 인지적 발전이 필요하다고 한다. 첫 단계는 불의 속성을 이해하는 개념화의 단계다. 두 번째 단계는 물을 뿌려 불을 끄거나 반대로 불을 키우는 통제의 단계다. 마지막 단계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불을 피우는 단계다. 퐁골리의 침팬지들이 첫 단계를 통과 중이라면, 인류는 세 번째 단계를 깨뜨리고 미지의 단계에 진입한 건 아닐까? 불을 산업적으로 만들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단계. 온실가스가 키운 거인에게 복수를 당하는 단계.
기온이 35도 넘어가면 인간은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메가파이어의 중심은 최고 1500도다. 일이백 년 전까지만 해도 자연만 만들 수 있는 온도였다. 하지만 인간은 불을 다루는 데 거침이 없었고, 증기기관, 내연기관, 화력발전소에 이르러 1000도가 넘는 불을 만들어냈다. 수소폭탄이 핵반응을 일으킬 때는 순간적으로 1억 도까지 올라간다.
인류의 집단적인 불 사용은 지질학적인 힘이 되었다. 이 불은 화석연료를 추출하고 연소하여 만든 불이라고 환경사학자 스티븐 파인은 말한다. 인류는 이 불을 통제해 문명을 이뤘다고 자부했지만, 역설적으로 지구의 물리·생물·화학적 순환을 뒤흔들어 산불을 키웠다.
천년고찰 고운사가 전소된 현장을 우울하게 지켜보고 나오는 길에 한 마을에 들렀다. 문학관의 기와가 무너져 내렸고, 축사는 죄다 거멓게 탔다. 큰 불덩어리가 떨어진 것 같았다. 그을린 시멘트 기둥에 달린 환풍기만 살랑살랑 돌았다. 바람이 불었다.
남종영 KAIST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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