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한화(000880) 지분의 절반을 증여하면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한화에어로)의 유상증자가 총수일가의 승계와 관련이 있다는 논란을 불식하겠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김 회장의 증여에도 주주들 돈으로 자식들의 승계 부담을 덜어준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아울러 한화에어로의 가족회사 지분 매입
→유상증자
→증여 등 일련의 과정이 승계라는 하나의 틀에서 진행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꼼수 승계’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진=한화그룹)
지난 31일
㈜한화는 김 회장이 보유한 회사 지분
22.65%(보통주 기준
) 가운데 절반인
11.32% 세 아들에게 증여했다고 밝혔습니다
. 해당 지분은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
(4.86%),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088350) 사장
(3.23%), 삼남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
(3.23%)에게 각각 증여됐습니다
.
증여 후 김 회장의 ㈜한화 지분율은 11.32%로 줄어든 반면 김 부회장은 9.77%, 김 사장과 김 부사장은 각각 5.37%로 늘었습니다. ㈜한화의 최대 주주는 22.16%를 보유한 한화에너지입니다. 한화에너지는 김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입니다. 김 부회장의 지분이 50%로 가장 많고, 나머지 두 형제의 지분이 각각 25%씩입니다. 이를 고려할 때 이들 삼형제가 보유하는 ㈜한화 지분율은 42.67%가 됩니다. 이를 두고 한화그룹 측은 “경영권 승계가 완료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지분 증여로 인해 ‘3세 경영’이 본격화하며 삼형제가 각각 맡고 있는 분야의 계열 분리 등 후속 작업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김 부회장은 현재 그룹 전반과 방산·항공우주·에너지 분야를 맡고 있고, 김 사장은 금융(보험·증권), 김 부사장은 유통·로봇·반도체 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한화그룹 측은 이번 전격 증여에 대해 “김 회장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불필요한 논란과 오해를 신속히 해소하고 본연의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지분 증여를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화에어로가 김 회장의 세 아들이 보유한 회사 주식을 고가에 사주며 ‘승계용 실탄’을 마련한 뒤 3조6000억원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해 주주들의 돈으로 부담을 덜려 한 것 아니냐는 시장의 논란을 차단하겠다는 것입니다.
한화그룹 승계 후 보유 계열사 지분도 (그래픽=뉴스토마토)
앞서 한화에어로는 유상증자 계획 발표 전인 지난 2월10일 한화임팩트파트너스(5.0%)와 한화에너지(2.3%)가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를 약 1조3000억원에 매입한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거래는 지난달 13일 이뤄졌습니다.
그 결과 한화에어로의 한화오션 보유 지분율은 연결 기준 기존 34.7%에서 42.0%로 늘어나 김 부회장의 방산 부문 지배력이 강화됐습니다. 또한 이 거래를 통해 한화 총수 일가의 지배력의 높은 한화임팩트파트너스와 한화에너지는 1조3000억원의 막대한 현금을 챙기게 됐습니다.
이후 한화에어로는 글로벌 방산 시장 ‘톱 티어’ 도약을 노린 선제적 투자 자금 확보를 근거로 주주가치 희석 우려에도 국내 자본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인 3조6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같은 일련의 과정에 대해 지분 증여와 유상증자는 ‘별개’의 이슈라고 잘라 말합니다. 대표적 재벌개혁론자인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화에어로가 유상증자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투자 자금이 필요해서인데, 자금이 필요한 회사가 다른 회사의 주식을 취득하는 것은 전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라며 “김 회장이 주식을 증여했다고 해서 이전에 했던 부적절한 행동이 정당하고 적절한 것으로 바뀌는 것은 전혀 아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유상증자 자체의 문제점도 여전합니다. 재벌 지배구조 전문가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한화에어로가 한화에너지와 한화임팩트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현금을 준 것은 계열 분리를 할 때 핵심 역할을 할 계열사한테 자산을 현금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 것”이라며 “계열사 주식을 현금으로 바꿔주는데 제일 잘 나가는 한화에어로의 유상증자를 활용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한화에어로의 유상증자가 실제적인 투자 목적이라고 말을 했지만 이는 결국 핑계고 계열 분리에 대한 그룹 전체 차원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서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며 “상법 개정이 됐으면 주주들이 이사들을 배임으로 고소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상법 개정을 해야 되는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에 한화에어로가 가족회사 지분을 사들인 것이 결국 이번 승계 과정에서 납부해야 할 증여세의 재원 마련을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더해집니다. 김 회장의 ㈜한화 주식 증여로 세 아들이 내야 하는 증여세는 2218억원(3월4일~31일 평균 종가 기준) 규모인데 상장을 추진 중인 한화에너지가 상장을 완료하면 지분 매각을 통한 현금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번 지분 증여가 ‘꼼수 승계’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사진 왼쪽부터)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퓰너 헤리티지재단 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사진=한화그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같은 내용을 꼬집고 나섰습니다. 이 대표는 전날 김 회장의 지분 증여 소식이 알려진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주가는 증여세에 영향을 미치니 낮아진 주가로 증여세를 절감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자녀 소유 회사에게 지분 매매 대가로 지급한 돈이 증여세의 재원이 될 거라는 추측까지 나온다”고 직격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자본시장에서는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라며 “’자본 시장을 현금 인출기로 여긴다’는 주주들의 비판에도 할 말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박 교수 역시 “증여를 한 것은 결국 경영권 승계 의혹에 대한 답을 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세습과 계열 분리라는 큰 맥락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한화에어로의 가족회사 지분 매입→유상증자→증여 등 일련의 과정이 ‘승계’라는 하나의 틀에서 진행된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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