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과학 공부를 권함
2025-02-19 06:00:00 2025-02-19 06:00:00
지식을 넓히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현실의 쓸모 여부와 상관없이 새로운 지식이 전해주는 교양적 재미는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사람들은 거의 써먹을 일 없는 라틴어,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고 양자역학, 상대성원리를 공부한다. 물론 지식이 양적으로 충분히 축적되면 질적 전환을 일으켜 통찰과 발견의 단계까지 가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무방하다.
 
우리는 주로 평탄한 길을 걷는다. 그러다 때때로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동네 뒷산, 북한산, 지리산, 그리고 산티에고나 돌로미티, 존뮤어 트레일.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위한 거겠지만 등산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자신의 한계를 넘고 싶은 것이다. 육체적 한계라는 허들을 넘었을 때의 기쁨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등산에 흠뻑 빠진다.
 
지식을 배우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평소엔 적당히 아는 수준에서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삶의 변화나 위기를 맞았을 때 지력의 한계를 절감한다. 지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 앞에 일부러 장애물을 가로놓고 그것을 넘기 위해 애를 써보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수용자의 입장에서 볼 때 지식은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익숙한 생각의 회로를 강화시키는 것과 낯선 생각의 회로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 나이가 들수록 전자에 안주하기 쉽다. 20, 30대 들었던 옛노래에 빠져들 듯 기존 관념과 어울리는 책이나 콘텐트에만 마음이 기운다. 후자는 식습관을 바꾸거나 다이어트를 하듯 의식적 노력을 하지 않으면 지속하는 것이 쉽지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읽은 책을 분야로 나눠보면 과학이 압도적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과학은 수학과 함께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학문이었다. 생물 과목은 그래도 말랑말랑한 꽈리 같아 그럭저럭 따라갔는데 화학과 물리는 딱딱하고 무거운 돌 같아 노력도 하지 않고 지레 포기하고 말았다. 대학에 올라가선 과학과 수학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홀가분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대학 4년 동안 들었던 과목 가운데 과학 분야는 2학점짜리 과학사가 전부였다.
 
그랬던 내가 40대 중반 무렵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우연한 계기로 과학자들과 교류하게 됐고 그들이 쓴 책을 선물로 받게 됐다. 인사치레로 몇 장을 들춰봤는데, 내가 고등학생 때 배웠던 수식과 화학기호가 가득한 그 과학이 아니었다.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실험과 추론을 통해 입증하거나 소개하는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주와 인간에 대한 통찰에 다다르기 일쑤였다. 
 
평생을 문과로 살아온 내가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나이에 <코스모스>, <종의 기원>을 읽고 진화생물학, 통계물리학, 양자역학의 세계에 빠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거기 놀라운 인문적 통찰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됐다. 오히려 인문학에서 잘 이해되지 않았던 원리와 개념들을 과학의 프리즘으로 설명하니까 더 명료하고 적확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몇 년 전 미국 과학자 호프 자런이 쓴 <랩걸>을 단숨에 독파한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랩걸>은 미네소타 출신의 비주류 여성이 과학을 만나고 힘겹게 자신의 연구를 이어가며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자전적 에세이다. 어떤 소설보다 표현과 문장이 아름답고 탁월했다. 자런의 필력이 놀라운 수준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과학적 사실이 창조한 미학이었다. 아직도 과학책을 펼치기 두려운 사람이라면 이 책부터 읽으면 좋겠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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