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래 손해보험협회장은 2025 신년사에서 "실손의료보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내실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 회장이 말하는 내실 강화는 실손 보장 범위를 줄이는 방식으로 보험사 손해율을 제고하겠다는 의미다.
금융당국도 손보협이랑 손발을 맞추는 모양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5세대 실손보험 개편 방향과 구 실손 가입자의 갈아타기 유도 방안을 발표했다. 도수치료 보장을 무력화하고 비급여 관리 강화를 통해 보험사의 적자를 보전해 주는 내용이다.
예상했듯 반발이 터져 나왔다. 소비자의 권익은 철저히 배제되고 보험사 의견만 반영한 구상이라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의료계는 물론 교수와 전문가들도 정부의 이런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22일 기자간담회에서 "과잉 진료 등 의료체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만들자 해서 안을 냈다"고 해명했다. 과잉 진료라는 레파토리는 바뀌지도 않는다.
김 위원장은 "보험회사들의 이익을 생각했다면 이렇게 복잡하게 안 했을 것"이라며 "보험의 손실률이 올라가는 상황이면 그에 맞춰서 보험료를 올려주는 게 보험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굳이 저런 언급을 하지 않아도 실손 보험료는 지금까지 계속 올랐고, 앞으로도 더 오를 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또한 보험료 인상은 일시적 대책일 뿐 근본적 처방이 될 순 없다는 건 김 위원장도 잘 안다. 실손보험이 세대를 거듭해 5세대까지 오게 된 배경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에선 1977년 국민건강보험을 처음 도입했다. 1989년부터는 전 국민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보험급여 대상이 제한되고 많은 의료서비스가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됐다. 의료기술도 계속 발전하고 인간의 수명도 연장되면서 의료비는 계속 늘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의 부담을 완화할 대책으로 2003년 보험업법을 개정해 도입한 게 실손보험이다.
현재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2023년 말 기준 3997만명이다. 국민건강보험 가입자 수(5145만명)의 78%에 해당한다. 실손보험을 제2의 건강보험이라 부르는 이유다.
실손보험은 이런 연유로 출발한 탓에 애초 돈을 벌 수 있는 설계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때 되면 정부가 앞장서 보험사기 잡아주고 과잉 진료 적발해 주면서 부수 업무와 자산운용으로 돈을 벌 다른 수단을 마련해 준 것이다. 그로 인해 손보사들은 매년 역대급 실적을 경신하며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앓는 소리만 한다.
과잉 진료를 줄여야 함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보장 항목을 제한하는 것만이 과잉 진료를 막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보험사도 자구책을 내놓고 의료계와 협상해야 한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결과를 도출해서 소비자들의 이해를 구하는 게 순서다. 보험사도 금융위도 전향적인 자세로 5세대 실손보험을 재검토해야 한다. 그래야 실손보험의 도입 취지를 살리면서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다.
김의중 금융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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