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찬 넥슨 지회장 "을사년, 보상 신뢰 원년으로"
세계 첫 게임사 노조 '스타팅포인트'
이달 21일 네오플 본교섭 시작
"성과급 알고 임금협상 시작해야"
"넷마블, 노조도 인정 안 하면 직원이 무얼 믿나"
"엔씨 분사는 자유보다 족쇄에 가까워"
2025-01-17 16:12:32 2025-01-17 17:04:13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한국 게임사들이 2025년 임단협(임금협상·단체협약)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도 노사 간 평행선이 예상되는 가운데, 세계 첫 게임사 노조인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넥슨 지회(스타팅 포인트)가 '보상에 대한 신뢰 회복 원년'을 내걸고 21일 네오플 법인 본교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 사측과 상견례를 마친 배수찬 스타팅 포인트 지회장을 17일 판교 소재 넥슨 사옥에서 만났는데요. 배 지회장은 투명한 보상 체계와 합리적인 출퇴근이 더 나은 게임 회사를 만든다고 힘줘 말했습니다.
 
배수찬 '스타팅 포인트' 지회장이 17일 판교 넥슨 사옥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성과급 전체 규모라도 알아야"
  
우선 개인 연봉 협상 이후 사측이 성과급을 정하는, 노사 간 '정보 불균형' 상태를 타파해야 한다는 게 노조의 주장입니다. 최소한 성과급의 총규모만이라도 알고 연봉 협상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는 건데요.
 
배수찬 지회장은 "회사는 어떤 기준으로 성과급을 준다는 설명을 한 적이 없다"며 "성과급 받은 적이 없는 직원들은 2023년 말에 받은 케이크를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밖에 평균 임금 550만원 상승과 법인별 초과이익분배금(PS)의 전 직원 분배도 사측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과거 넥슨코리아 기준 0.5%로 1회성 PS가 노사 합의됐었는데, 이를 제도화하고 비중도 늘려야 한다는 겁니다.
 
배 지회장은 "설문 결과, 조합원들은 PS를 가장 중요한 안건으로 꼽아 흥미로웠다"며 "영업이익이 적으면 그만큼 적게 받거나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음에도 이렇게 답했다는 건, 무조건 보상을 많이 달라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하는 만큼 받고 싶다'는 얘기"라고 말했습니다.
 
노조는 출퇴근 기준에 날씨를 합리적으로 반영하고 휴식에 대한 부담도 줄여야 한다는 요구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28일 폭설이 대표 사례였는데요. 배 지회장은 "폭설 때문에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고 회사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악천후에도 굳이 회사로 출근하는 게 정말로 일에 도움이 될까 싶어 단협 요구안에 포함했다"고 밝혔습니다.
 
넥슨에는 상·하반기에 각 하루씩 전사가 쉬는 제도가 있는데요. 이때는 직원들이 연차를 소진해야 합니다. 노조는 올해부터 직원들이 연차 소진 없이 이날에 쉬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넥슨 노조 '스타팅 포인트'가 지난해 11월28일 폭설에도 출근을 강행한 회사를 비판하는 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배수찬 지회장. 오른쪽은 노조가 만든 눈사람. (사진=스타팅 포인트)
 
"투쟁은 유쾌해야 한다"
 
노조가 해마다 사측과 줄다리기하는 이유는, 더 나은 노동 환경이 더 좋은 게임을 만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멉니다. 넥슨과 함께 3N(넥슨·엔씨·넷마블)으로 불리는 회사들은 노조를 동등한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거나, 고용 불안 해소 요구에 분사로 답하고 있습니다. 특히 넷마블은 노조 전임자 인정과 사무실 제공 요구 등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게임업계의 이같은 상황과 관련해 '선배 지회장'으로서 의견을 묻자, '왕도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결국엔 회사가 결단하도록 이끌어내야 한다는 얘깁니다. 배 지회장은 "조합원에게 보낼 메시지 준비, 개별 면담, 회사와의 교섭에 개인 시간을 내면 버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노조에 당연히 필요한 걸 회사가 주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게 싸움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회사엔 미래가 없다는 의견도 내놨습니다. 배 지회장은 "회사가 당장 노조를 잘 막아 돈을 조금 아낀다 해도, 노동조합조차 인정하지 않는 회사에서 직원들이 무얼 믿고 계속 나아가겠느냐"며 "넥슨도 노조가 생긴 뒤 외려 사람을 가장 많이 뽑을 수 있었고, 노동에 대한 인상이 굉장히 좋은 회사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독립성을 내세워 분사를 지속하는 엔씨소프트에 대해서도 "분사 법인에 자율권을 준다고 하는데, 대표가 본사 안에서 줄 생각이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며 "분사 법인이 망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정된 예산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자유보다는 족쇄를 느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모회사가 간섭하지 않아도 4~5년 정도의 개발비를 주고 경영권을 보장한다고 하면 그게 독립성"이라며 "거기서 잘 됐을 때의 성과급도 본사에 있을 때보다 많이 받을 수 있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스타팅 포인트는 이웃 노조가 원한다면 언제든 연대할 생각입니다. 물론 넥슨 사우들의 공감대부터 넓히는 게 우선입니다. 배 지회장은 "폭설에도 출근해야 했던 날, 팻말 시위 구호에 '점검일날/늦게출근/겜알못들/인증하냐'를 넣고, 눈사람에게 팻말을 붙이기도 했더니 사람들이 모이는 사진 명소가 됐다"며 "투쟁을 재밌게 해야 사람들이 더 관심을 둔다. 유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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