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비급여·실손보험 개편안 발표를 앞두고 보험 가입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보험료는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자기부담을 대폭 늘리고 보장 범위는 축소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일부 과잉진료 문제를 들어 보험사의 손해율을 소비자에게 떠넘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병원 수납창구.(사진=연합뉴스)
"보험사 도덕적해이, 소비자에 책임 전가"
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의료개혁특위가 추진 중인 개편안은 도수치료 같은 비급여 진료를 '관리급여'로 신설해 정부가 비급여 진료가격을 통제하고, 본인 부담률을 90%까지 늘려 과다 이용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험사 손해율이 늘어나니 보험 가입자들의 혜택을 축소하고 있다는 점이 소비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실제로 실손보험은 손해율이 높기 때문에 꾸준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대형 손해보험사들의 지난해 상반기 실손보험 손해율은 118.5%로 2023년 118.3%보다 0.2%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지난 2022년(117.2%) 이후 2년째 상승세입니다. 비급여 통제 불능으로 보험금 지급 규모가 늘면서 실손보험 적자가 심화된 탓입니다.
소비자들은 당장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복수의 보험 관련 커뮤니티와 카페에는 "개편이 아닌 개악이 진행 중이다" "보험사만 배불려 주는 제도" "혜택이 줄면 보험료도 내려가는 게 정상" "4월부터 5세대 실손 전환 가능성이 크니 그 전에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는 등의 글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실손이 사보험인 만큼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김원식 건국대 명예교수는 "정부는 사보험과 소비자 간 계약에 손을 떼는 게 맞다"며 "실손보험은 손해율이 100%가 넘다보니 시장에서 상품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 실손보험 상품 회계를 독립시켜 실손보험사 간 건전한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의료계도 정부가 민간보험사의 논리를 그대로 의사와 국민들에게 들이대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최안나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는 지난 4일 성명을 통해 "실손보험을 등에 업고 폭발적으로 성장한 민간보험사들은 의료계의 경고대로 공보험을 교란하기에 이르렀다"며 "그러나 보험금 지급이 크게 늘어나자 보험사들은 환자나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에 그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국민들은 낸 돈 만큼 향후 보장받고자 건강보험으로는 받을 수 없는 신약·신의료기술 혜택과 최선의 진료를 받고 싶어서 '본인부담금' 조차 부담이라 가입했을 뿐 보험사의 말처럼 책임전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실손의료보험.(사진=연합뉴스)
보험업계 "실손보험 악용 꾸준히 제기"
실손보험 손해율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이 같은 보장 개편과 함께 실손보험 재매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는 기존 1·2세대 실손보험 계약사자들에게 보험사가 일정 보상금을 지급한 뒤 계약을 해지하거나 자기 부담률을 더 올린 5세대 상품으로 전환을 유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만 재매입이 강제성이 없고 가입자들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안이 될지는 회의적이라는 반응이 큽니다.
정부는 의료기관의 실손보험 가능 여부를 광고·설명하거나 보유 여부를 질문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도 제도화할 예정인데요. 이 역시 병·의원 현장에서 치료를 하다보면 실손보험 보유 여부 등을 확인해 적절한 치료법을 제시해야 하는데, 필요한 비급여 의료행위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다만 보험업계 관계자는 "도수 등 물리치료가 실손보험에서 나가는 금액의 22%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며 "실손보험에 대한 악용 사례는 꾸준히 업계에서 문제로 제기됐기에 손질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현행처럼 정부가 실손보험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구조가 아니라 실손보험사가 다양한 상품을 만들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실손보험의 특성상 장기간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데 보험사의 비즈니스 구조가 대부분 전문 경영인인 체제에선 '임기 중 사고만 안 터지면 된다'는 생각에 빠질 수 있다"며 "이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보험사 지배구조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홍 교수는 "보험사와 소비자 간 자율적 니즈에 맞도록 계약이 이뤄지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며 "지금보다 보험사에 자율성을 부여해 시대에 맞도록 실손보험이 진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옳다"고 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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