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손실 커지는 은행들 "당국 환헤지 한계"
정부 구두개입 만으로 한계…"외환보유고 동원 등 적극 조치 필요"
2024-12-20 16:02:00 2024-12-20 16:02:00
[뉴스토마토 문성주 기자] 최근 원달러환율이 1450원을 넘어서는 등 강달러 현상이 지속되면서 은행들이 외환거래 손익이 적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외환시장 안정화를 위해 구두 메시지를 내놓으며 국민연금의 환헤지 비율 확대까지 나서고 있는데요. 다만 은행들은 구두 메시지를 내는 수준의 간접 개입만으로는 역부족이라며 외환보유고 투입 등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환헤지 전략 실효성 '글쎄'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국민연금공단과의 외환 스와프 한도를 기존 5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확대하고 기존 스와프 계약의 만기도 내년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외환 스와프는 외환당국이 보유한 달러를 국민연금에 제공하고 국민연금이 이에 상응하는 원화를 외환당국에 맡긴 뒤 만기 시점에 계약 당시 환율에 따라 다시 교환하는 방식입니다.
 
국민연금은 해외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현물환 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하는데, 이 과정에서 달러 수요가 증가하면 환율 상승 압력을 가중시키게 됩니다. 외환당국이 국민연금에 필요한 달러를 직접 공급하면 국민연금은 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하지 않아도 돼 달러 매입 수요가 줄어드는데요. 환율 상승세를 완화하고 외환시장 안정 효과로 이어집니다.
 
국민연금도 해외투자 환헤지 비율을 최고 10%까지 올리는 조치의 기한을 내년까지로 연장했습니다. 국민연금이 환헤지 비율을 상향 조정하면 시장에는 달러 공급이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국민연금이 환헤지를 위해 달러 선물환을 매도하면 은행은 선물환 매수 포지션이 돼 외화를 차입해 시장에 매도하기 때문입니다. 자체적으로 정해놓은 일정 기준보다 원달러환율이 높아질 경우 보유한 해외자산 일부를 선물환을 통해 매도하는 방식으로 외환시장 안정에 기여한다는 겁니다.
 
전략적 환헤지는 발동 조건에 도달해야 이행되는 장치로 환율이 크게 치솟을 때 대규모 환위험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자세한 발동 조건을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환헤지 조치가 발동되는 조건을 원달러환율이 1400원대 후반을 일정기간 유지할 때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전략적 환헤지 가동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만큼 실행된 적이 없는 방안입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당국이 내놓은 조치는 기존에 행해지고 있는 정책을 확장하는 정도의 선제적 조치 정도로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결정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며 "정부가 외환보유고가 충분하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동원해 환율 안정에 기여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밝혔습니다.
 
당국은 현재 환율이 치솟는 근본적인 원인이 대내외적인 불안에 있는 만큼 외환스왑을 통한 해외자산 환헤지가 환율 변동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당국의 조치는 대내외적인 불안감으로 환율이 치솟은 만큼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 위한 방안"이라며 "외환보유고를 동원해 환율을 누르는 방법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환율 조작과 관련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여러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은 최근 원달러환율 추이 (그래프= 뉴스토마토)
 
4대 은행, 외환실적 적자 전망
 
대내외적인 불안정으로 최근 원달러환율이 1450원을 넘는 등 강달러 기조가 이어지며 올해 국내 주요 시중은행의 외환 실적은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의 외환거래 누적 손실은 3864억원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018억원 순익을 본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은행별로는 우리은행이 상반기에만 5942억원 순손실을 내며 손실 폭이 가장 컸고 KB국민은행이 683억원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각각 1286억원, 1474억원 이익을 냈습니다.
 
원달러환율은 지난해 4분기 1300원대 아래에서 안정화됐다가 올해 들어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와 미국의 장기화 가능성 등이 부각되며 1350원선을 뚫었습니다. 이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심리적 마지노선인 1400원을 돌파했습니다. 최근 비상계엄 사태로 1410원대를 진입하고 탄핵 정국이 본격화되면서 1430원 이상으로 치솟은 상황입니다.
 
원달러환율이 내년 상반기 1500원대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데요.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 기대와 국내 성장률에 대한 우려에 내년 금리 인하 가능성이 겹칠 경우 단기적으로 환율이 치솟을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은행 관계자는 "고환율이 지속될수록 은행들이 외화를 해외에서 조달해오는 데 있어 비용이 올라가고 이는 곧 은행의 수익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정부는 20일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열고 환율 급등에 대응하고자 은행의 외화 유동성 확보를 지원하고 원화용도 외화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외화 수급 개선 방안'을 논의·확정했습니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은 외환 수급을 대외 건전성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실물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한다는 목표하에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외화 조달에 애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물환포지션 한도를 상향 조정했습니다. 국내은행의 경우 현행 50%에서 75%로 상향하고 외은지점은 250%에서 375%로 올렸습니다.
 
선물환 포지션 한도는 2010년 10월 급격한 자본 유입과 단기 차입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은행 등이 자기자본 대비 보유할 수 있는 선물환 한도를 뜻합니다. 당국이 은행이 외환 선물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금액의 한도를 늘려줌으로써 은행들의 외화자금 공급 여력이 확대돼 달러 공급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19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435.5원)보다 16.4원 오른 1451.90원에 마감했다. 사진은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 (사진= 뉴시스)
 
문성주 기자 moonsj709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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