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재계가 극렬 반대했던 상법 개정 논의가 재개되는 가운데 반대급부로 배임죄가 폐지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국민의힘에서 특별배임죄 폐지 법안을 발의했으며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상법 개정 대신 배임죄 폐지로 타협하는 선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법 개정의 실효성이 낮기 때문에 배임죄 폐지 시 역작용만 커질 것이란 우려가 상존합니다.
지난 14일 탄핵소추안을 표결하는 국회. 사진=연합뉴스
17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계엄과 탄핵 사태 후 증시가 부진해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 차원에서 상법 개정 논의가 다시 불붙을 전망입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계엄 사태로 미뤄졌던 상법 개정안 정책 토론회를 오는 19일 여는 계획을 확정했습니다. 좌장은 이재명 당대표가 맡습니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 개정 대신 배임죄 폐지설을 꺼냈던 바, 이재명 대표도 “기업인 배임죄 문제를 공론화하자”며 거들었습니다. 이 대표는 특히 삼성 사례를 거론하면서 배임죄가 검찰이 잦은 내사로 기업을 압박하는 빌미가 된다는 취지로 부정적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상법 개정에 반발하는 재계에 대한 ‘당근책’으로 배임죄 폐지 또는 완화 방안이 여느 때보다 힘을 얻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근래 대기업은 횡령, 배임죄로 기소된 사례가 끊임 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연초 아진산업부터 최근 남양유업까지 배임혐의 발생 또는 재판 결과 등에 대한 공시가 100건 가까이 됩니다. 상장사의 경우 배임혐의가 발생했을 때 감독당국이 실질심사를 통해 상장폐지여부도 판단하게 되는데 배임혐의로 기업의 영속성과 시장의 건전성이 저해될 것을 방지하는 의도입니다. 코리아디스카운트 요인이 꾸준히 적발되지만 배임죄가 폐지되면 처벌을 통한 재발방지가 어렵단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연중 적발한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금지규정 위반 행위(기업집단 소속 계열사간 부당지원 행위 및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 이익 제공)는 총 5건이었는데 이에 따른 과징금 처분 외 배임죄 혐의 고발은 하지 않았습니다. 동일한 법률 규정을 두고 적용하는 데 있어 감독당국이 태도의 차이를 보입니다. 이를 두고 시장과 학계에선 검찰이 배임죄 기소를 남발한다면 검찰 개혁이 필요한 문제지 배임죄 자체를 없애는 건 잘못된 논리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배임죄 폐지설에 대해 “(상법) 일보 전진을 핑계로 (배임죄) 10보 후퇴하는 개악”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이사가 충실·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사후적 법적 제재가 불가능해진다”며 “주주대표 소송을 해도 디스커버리제도(증거개시제도)가 없기 때문에 입증하기 어렵고 승소해도 배상이 주주가 아닌 회사에 귀속되기 때문에 소송 자체가 제기되지 않아서 충실·보호 의무가 사문화될 수 있다. 배임죄를 폐지하려면 디스커버리제도 도입과 주주대표소송 개정이 전제돼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배임죄 폐지로 형사를 면하면 민사만 가능한데 그 수단인 주주대표 소송은 실효가 거의 없어 상법 개정 효익도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한편,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해 국회 계류된 상법 개정안은 20건 이상으로 그 골자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입니다. 국민의힘에선 김성원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이 있는데 경영판단의 원칙 도입, 이사의 특별배임죄 폐지, 복수의결권주식 도입 등 재계 편에 선 방안을 담았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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