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결혼 과정에서 왜 파혼을 하고 결혼을 꺼리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웨딩플래너를 통해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 대여·메이크업) 비용을 지불하고 나면 절대 끝이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추가금이 붙습니다."
예비부부를 울리는 결혼준비대행업체의 갑질이 무더기로 적발됐습니다. 이들은 패키지 형태로 상품을 판매하면서 소비자들이 개별 서비스 가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깜깜이 계약'을 체결해 추가 비용이나 과도한 위약금을 물게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진 구입비 따로, 피팅비 따로…'스드메 갑질'
공정거래위원회는 18개 결혼준비대행업체의 이용약관을 심사해 6개 유형의 불공정 약관조항을 시정하도록 했다고 12일 밝혔습니다.
약관 심사를 받은 18개 업체는 △다이렉트컴즈 △아이니웨딩네트웍스 △베리굿웨딩컴퍼니 △제이웨딩 △케이앤엠코퍼레이션 △블랑드봄 △마주디렉티드 △하우투웨딩그룹 △와이즈웨딩△위네트워크 △웨딩쿨 △아이패밀리에스씨 △조앤힐 △웨덱스웨딩 △헬렌조 △한나웨딩 △365라이프앤아쌈 △여행채널 등입니다.
6개 유형의 불공정약관 유형은 △필수옵션 별도항목 구성 조항 △옵션가격 및 위약금 세부기준 불명확 표시 조항 △과도한 위약금 조항 △부당한 거래책임 면책조항 △부당한 양도금지 조항 △부당한 재판관할 조항입니다. 이 중 블랑드봄은 6개 유형에서 모두 적발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결혼준비대행업체들은 모두 똑같이 이원화된 요금체계를 두고 있었는데요. 기본으로 제공하는 스·드·메 패키지 서비스에는 사진 '촬영', 드레스 '대여', 메이크업 서비스 정도만 포함되도록 해놓고, 별도로 2~30개의 옵션을 둬 추가요금을 내도록 하는 식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옵션 중 일부는 기본 스·드·메 서비스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사실상 필수적인 서비스인데도 옵션으로 구성해 별도 비용을 청구한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으로 사진 파일(원본·수정본) 구입비, 드레스 피팅비, 메이크업 얼리스타트비 등이 꼽힙니다. 예컨대 웨딩 사진의 경우 촬영으로 끝나지 않고 간직하거나 청첩장 등에 활용하려면 파일을 추가로 구매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자들은 이들을 필수구매항목으로 표시하는 등 스스로도 필수적인 항목이라고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요금을 이원화했는데요. "기본 패키지 가격에서 제외하면 가격이 낮아 보이는 효과가 있어 소비자 유인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입장입니다.
공정위는 필수옵션이 가격 경쟁의 대상이 되지 않아 스·드·메 업체에는 안정적인 수익원이 되는 반면 소비자에게는 고스란히 부담으로 전가된다는 점, 소비자가 계약에 앞서 전체 스·드·메 서비스 비용을 정확히 인지하고 비교하기 어려워진다는 점, 결혼이라는 중요한 행사를 앞둔 소비자의 거래상 지위가 취약한 점 등을 고려할 때 고객에게 불리한 조항으로 보고 사진 파일(원본·수정본) 구입비, 드레스 피팅비, 메이크업 얼리스타트비를 별도 항목에서 제외해 기본제공 서비스에 포함하는 것으로 약관을 시정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헬퍼비·출장비 구체화…과도한 위약금 조항 개선
결혼준비대행업체의 약관에는 옵션 가격(추가 요금)이 얼마인지, 위약금 세부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명확하게 표시돼 있지 않았는데요. 추가 요금의 경우 드레스 헬퍼비, 출장비 등 가격 범위를 표시하도록 했습니다.
특히 위약금은 손해배상액으로 볼 수 있어 소비자의 권리·의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인 데다 장기간의 결혼 준비기간 중 여러 변수로 인해 일정을 변경하거나 거래를 취소해야 할 경우도 종종 발생할 수 있어 소비자에게 명확히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드·메 패키지 전체 가격의 20%를 계약금으로 한 뒤 계약 해지 시 실제 서비스 개시 여부나 귀책 사유 등을 고려하지 않고 계약금을 일체 반환하지 않도록 하는 조항, 법상 정해진 청약 철회 가능 기간(7일 또는 14일)보다 짧은 기간인 3일 이내 에만 계약금 환불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항 등이 있었습니다.
공정위는 소비자에게 부당하게 과중한 손해배상 의무를 부담시키는 조항으로 보고 위약금 기준을 합리화하고, 청약철회 기간도 법에 부합하도록 약관을 시정했습니다.
이 밖에도 고객과 개별 스·드·메 업체 간 거래에 대한 모든 책임에서 결혼준비대행업체를 배제하는 부당한 면책조항, 결혼준비대행계약의 당사자 지위를 양도하지 못하도록 한 부당한 양도금지조항, 재판관할을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정한 부당한 재판관할조항 등의 조항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도록 했습니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중이 52.5%로 2022년(50%)에 비해 반등했는데요. 매년 약 40만명에 달하는 예비부부들이 스·드·메 분야에서 가장 크게 불편을 호소하는 부분에 대해 불공정·불합리한 거래관행 형성의 근간이 된 약관을 적극 시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특히 약관 시정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 7월 발표한 범정부 저출생 대책 중 하나로, 공정위는 지난 8월부터 조사에 나서 3개월 만에 심사를 완료했습니다. 이번에 적발되지 않은 다른 업체가 불공정 약관을 자진 시정하지 않을 경우, 시정 권고에 명령을 거쳐 검찰 고발까지 당할 수 있습니다.
신용호 공정위 약관특수거래과장은 "불공정한 조항을 건드려 결혼준비대행업체끼리 가격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는 일종의 '넛지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공정위는 결혼준비대행업계와 소통을 통해 시정된 약관 이행여부를 점검하는 한편, 표준약관 제정, 가격정보 공개 강화 등 결혼준비대행업 전반의 거래관행 개선을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신용호 공정거래위원회 약관특수거래과장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18개 결혼준비대행업체의 이용약관을 심사해 6개 유형의 불공정 조항을 시정조치 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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