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생각과 상황의 연속적 흐름을 그대로 보여줄 수 없습니다. 특정 지점의 특정 단면을 잘라야 글이 됩니다. 아무 데나 자른다고 글이 되지 않습니다. 글에 담을 생각과 상황의 본질이 응축된 지점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글을 쓰는 의도에 맞게 전략적으로 칼을 대 예리하게 단면을 베어내야 합니다.
불교 경전은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비유하죠. 인간은 장님처럼 코끼리의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만지는 부위에 따라 기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주장이 옳고 다른 사람의 주장이 틀리다고 서로 우기면 둘 다 진실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
모두 옳을 가능성과 모두 틀릴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화를 해야 진실에 가까워집니다. 그래야 전체적 진실에 최대한 가까운 부분적 진실의 총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원효스님이 주창한 화쟁사상의 요체 가운데 하나인 ‘개시개비(皆是皆非)’예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전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장님들이 각자 파악한 판단과 정보를 정직하게 공유하는 것입니다. 불순한 의도나 안팎의 검열로 자신의 판단과 정보를 왜곡할 때 개시개비의 가치는 산산이 깨져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진실은 미궁에 빠지고 소모적 논쟁이 갈등으로 비화할 것입니다.
장님들이 각자 파악한 판단과 정보를 정직하게 공유하는 것. 글쓰기와 말하기는 바로 이 정직한 편견 위에서 꽃을 피웁니다. 정직한 편견으로 대화하고 정직한 편견으로 논쟁해야 합니다. 이렇게 정직한 편견을 가진 말과 글이 넘쳐나야 집단지성이 구현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사회적 자본입니다.
예전 KBS 다큐멘터리 ‘슈퍼 피쉬’에서 동남아 지역의 한 남자가 무논에서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360도 각도에서 촬영한 장면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물고기가 손에서 퍼덕거리는 찰라의 장면을 60개의 카메라, 60개의 앵글로 담아낸 다음 그것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보여줬습니다. 그 생생함과 놀라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나중에 이것이 시간 구획, 타임 슬라이스(Time Slice) 기법이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미 워쇼스키(Wachowski) 자매가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1999)에서 트리니티(Trinity)가 경찰관들과 대결하는 신(scene)에서 사용했더군요. 트리니티가 공중에 떠 있는 정지 동작을 전방위로 보여주는 화면 말입니다.
타임 슬라이스 기법으로 글을 쓰면 참 재밌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러티브나 논증 모두에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중국 소설가 다이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에서 11명의 인물이 그들의 관점, 즉 1인칭 시점에서 문화대혁명의 고통과 상처를 그려냈는데 이 작품도 넓은 의미의 타임 슬라이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일본 영화 ‘라쇼몽’도 생각나는군요.
편견을 넘어서겠다고 주장하면서 편견을 더 심화시키는 말과 글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상대를 공격하는 예리한 무기로 말과 글을 쓰기 위해 단편적 사실과 예단을 서슬 퍼런 날로 벼리면 박수를 받는 세상입니다.
전 글쓰기 전문가로서 각자가 쓴 정직한 편견의 글이 우리 사회 전체에 타임 슬라이스처럼 이어지는 그런 세상을 꿈꿔봅니다. 내 편견을 존중하는 만큼 상대의 편견도 존중하는 열린 편견일 때 아름다운 타임 슬라이스가 만들어질 겁니다. 편견에 의지해 편견을 넘어서는 말과 글의 세상이 오길 꿈꿉니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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