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상당히 흐른 이후에 과거를 회상해 보면, “아! 그때가 변화의 시작이었구나”하고 알아차리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곡선의 변화가 시작되는 점을 변곡점이라고 하지요. 이번 국회의원 총선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4년마다 반복되는 보통 선거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2대 총선은 다릅니다. 세대교체라는 거대한 변화가 시작된 선거입니다. 역사의 변곡점이 되는 선거로 기록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두 차례 세대교체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세대교체는 1960년대입니다. 해방 직후는 독립운동 세대가 주도했습니다. 독립운동과 달리 나라 만들기는 주체들의 의지만 가지고 하기에는 복잡했고, 동족상잔이라는 전쟁까지 얽힌 난제였습니다. 더구나 1인 독재체제 연장으로 국정 난맥상은 물론이거니와 민주주의 제도적 절차까지도 무시하는 부정선거를 함으로써 민중의 저항으로 무너졌습니다. 야당이었던 민주당도 4·19혁명 덕에 집권했지만, 당시의 시대정신을 수행할 주체로 준비되지 못했습니다. 박정희로 대표되는 젊은 군인들이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았고, 식민지 유산인 학병세대(일제 식민지 말기 학도 지원병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징용된 4,300여 명의 대학생 지식인)가 국정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여권의 인물로는 소설가 이병주, 국회의원 신상초, 문화방송 사장 황용주 등이었고, 박정희 정권에 맞서는 야권의 인물로 사상계 장준하, 고려대 총장 김준엽 등입니다. 이승만과 민주당 모두를 무능한 집단으로 규정하고, 박정희 정권에서 주역으로 참여했거나 관료, 전문가로 조국 근대화라는 구호에 함께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민주당은 1970년에 와서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으로 40대 기수론이라는 이름으로 실질적인 세대교체를 실현하게 됩니다.
두 번째 세대교체는 2000년대 전후입니다. 민주화의 진행 결과가 세대교체로 나타난 것입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전두환 군부정권을 무너뜨리고 문민정부를 세우지만,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97년 대선에서 평화적인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구호로 김대중 참여정부가 탄생합니다. 민주화에 투신했던 재야와 학생운동 세대가 정치권 수혈(영입)이라는 이름으로 세대교체가 일어났습니다. 민주당으로 김민석, 김영춘, 이인영, 임종석, 송영길 등이었고, 한나라당으로 원희룡, 오세훈 등이 대표적으로 영입된 인물입니다. 또한 민주노동당의 탄생과 국회 진입도 정치권의 새로운 흐름으로 볼 때, 세대교체와 맞먹는 역사적인 변화였습니다. 결국 조국 근대화라는 산업화와 민주화 흐름을 이어서 ‘복지국가’ 의제가 2010년 이후 주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고, 큰 흐름을 형성하였습니다.
이번 22대 총선은 세 번째 세대교체 시작점입니다. 거대 양당은 위성정당(가짜정당)을 만들어 175석, 108석을 달성했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 수가 없습니다. 아주 작은 변화이지만, 완연히 다른 새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정당법과 선거법을 정상적으로 지켜서 지역구 당선자와 비례대표 당선자를 배출한 유일한 정당으로 개혁신당이 탄생했습니다. 이준석 당대표의 경기 화성(을) 당선과 이주영, 천하람 2명이 비례대표가 당선된 것입니다. 국민의힘 김재섭, 김용태 그리고 민주당의 전용기 최연소 당선자 등은 한국 정치의 젊은 시대를 예고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혁명적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역사의 페이지에는 이미 도착한 미래, 세 번째 세대교체가 시작된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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