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총선이 막을 내렸습니다. 결과를 놓고 세간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인 행보에 대한 유권자들에 심판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여당이 참패하고 야당이 대승을 거뒀으니 상당부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하지만,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보자면 이번 총선엔 심판이란 단어만 떠오릅니다. 여당은 ‘이조심판’을, 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을 목이 터져라 외쳤고 그 소리만 유세차에서, 언론을 통해 퍼져나갔습니다. 마치 총선이란 누구를 심판할지 유권자한테 손 들어달라는 게임 같습니다.
국회는 심판기관이 아닙니다. 사정기관도 아닌 국회에 심판을 붙이니 어색하기까지 합니다.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야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졌고, 이는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견제 기능이 강화된다는 걸 의미하며, 야당이 이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할 동력을 갖게 된다는 걸 얘기하니 이를 심판이라고 하나 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기본적으로 돌아보면 지역구 한 명의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한 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입니다. 그 의원들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의 역할을 맡아 법안을 만들고 국정을 감시하며, 예산을 심사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심판이 상징적 기능을 할 순 있지만, 근본이라 할 순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총선에서 특히나 심판만 강조되고 나머지는 실종됐다고 평가합니다. 공천 과정에서부터 이미 예고하더니 선거전에 들어가서도 상대방 후보를 향한 막말과 네거티브, 폭로전이 난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책 공약이 실종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많은 유권자들이 정작 이 후보가 국회에 가면 무슨 법을 만들고 어떤 활동을 할 건지는 알지도 못한 채 투표소에 향했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누가 국회에 가서 일을 잘할 지가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했는지 아니면 이재명 당대표가 잘못했는지 중에 덜 미운 사람 고르기를 강요당한 셈입니다.
거대양당의 공약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선심성 공약과 얼핏 듣기에 좋은 말들만 난무했지 당장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연히 공약을 어떤 식으로 이행하겠다는 계획은 찾을 수 없습니다.
지역 균형 발전은 이번 총선에서 다루지 않은 의제 중 하나입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오명 아래 10년 뒤, 20년 뒤 수도권이 아닌 대한민국은 어떤 미래가 있을지 불투명하기만 합니다. ‘정치는 상상력’이란 말이 한국에선 고어가 됐지만, 적어도 지역 균형 발전에서만큼은 그 상상력이 마구 펼쳐져야 하지 않을까요.
지방의 한 소도시에는 활동할만한 청년이 100명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청년이 왜 안 갈까 싶어도 지방 도시들의 상당수는 이미 인프가가 부족하다 못해 망가진 상태입니다. 수도권 출신이 절반이 넘는다는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무작정 돈 몇 푼 줄테니 지방으로 가라 등떠미는 건 무책임합니다.
저출산 문제도 변죽만 올리고 말았습니다. 지난 총선 때에도 양당 공약 중 저출산이 맨 앞을 차지했지만 별반 달라진 건 없습니다. 노인 빈곤, 사교육, 비정규직 처우, 청년 실업, 장애인 자립, 다문화가정, 이민자, 기후위기 관련 공약들을 찾으려면 눈을 크게 떠도 모자랍니다.
이제 우리 지역과 정당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탄생했습니다. 그들이 부디 국회에 나갔을 때는 자신에게 공천을 주고 여러 번 지원유세를 온 힘있는 사람을 쳐다보지 말고, 자신이 만들고 표결하는 법안으로 인해 삶이 영향받는 사람들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우리가 뽑은 것은 어떤 계파에 속해 있는 인물이 아닌, 국회의원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박용준 공동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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