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막판 국민의힘은 “범야권이 2백석 넘으면 대통령을 탄핵하고 개헌할 것”이라고 국민을 협박했다.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한국 정치는 벌써 두 번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를 경험했다. 2004년 탄핵안은 70%가 넘는 범야권 의원들의 찬성으로 통과되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었다. 2016년 탄핵안은 야권 의석수가 2/3은커녕 60%도 되지 않는 국회에서 통과되어 헌법재판관 8명의 일치된 의견으로 피청구인을 파면했다. 탄핵은 의석수가 아니라 명분과 민심에 달린 것이다.
가장 악질적이고 저급한 발언의 주인공은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범야권이 200석 이상이면, 현재는 대통령이 가진 사면권을 국회가 행사하도록 개헌을 해서, 야당이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의 죄를 ‘셀프 사면’한단다. 장담하는데 민주당이 만든 개헌안에 그런 게 들어있는지 확인되는 순간, 국민투표나 국회 통과는 고사하고 민주당 대표가 사퇴해야 할 사안으로 번질 것이다. 친명계 절반도 비명계가 될 것이다. 그래도 국회에서 통과되면 국민투표 부결은 물론이고 민주당은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 2028년 총선 대패한다. 취기가 올랐을 때 농담으로 떠들고 치울 만한 시나리오를 마이크 앞에서 진지하게 퍼뜨리는 모습에 나도 헷갈렸다. 스스로 믿는다면 연민을 보낼 일이고, 본인도 알면서 한 거짓 선동이라면 아주 악질이다. 어느 쪽이든 한 위원장은 정치가 본인에게 맞는 업인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번 총선 정치인 망언의 2위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발언을 선정한다. 그는 총선 일정을 이유로 재판에 불출석하다가 ‘강제 구인’ 검토에 몰리는 불명예를 자초했다. 물론 이 대표가 재판 일정의 연기를 요청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 아니며, 그것이 수용되지 않은 것에 대해 적절한 수위에서 불만을 표하는 것은 그의 자유다. 그러나 이를 “정치 검찰이 기획하는 것”이라 선동한 것은 최악의 발언이다. 강제 구인 검토는 사법부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법조인인 이 대표가 이 절차를 모를 리 없다.
이 대표의 속이 빤히 보인다. “아전인수로 검사 독재 심판 프레임을 강화하고 있다”, “아직은 재판중이라 검사만 공격한다”는 해석이 곧바로 나왔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판결 내용에 따라 추후 여차하면 사법부를 공격할 것이라는 불길한 조짐이다. 여기에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소모될지, 한국 정치는 또 진전 없이 그저 또다른 방향의 ’심판‘으로 치달을지, 상상하지 않으려 애쓰게 된다.
다음은 분석가들이 저지른 대대적 실수 혹은 고의적 선동을 살펴볼 차례다. 대표적인 사례 하나가 조국혁신당 급부상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다. 공교롭게 당시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파동과 올초 상승세를 보이던 국민의힘의 하락이 겹쳐 일어났다. 분석가들이 가장 자주 나타내는 나쁜 습관은 ’시기가 맞물린 것‘을 인과관계로 해석하는 것이다. “민주당 공천에 실망한 친문층이 조국혁신당으로 옮겨갔다”, “윤석열도 이재명도 싫은 유권자들이 조국을 택했다”는 엉터리 진단이 난무했다.
MBC 패널조사에서도 확인되었듯 적어도 조국혁신당의 초창기 지지층, 핵심 지지층은 친명 성향이다. 이재명 대표 긍정평가가 오히려 더불어민주연합 지지층보다 더 높았다. 조국 대표의 대선 주자 지지율은 조국혁신당 지지율의 반의 반 수준이다. 조국혁신당 지지층 대다수도 대선 주자로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고 있다. 조국도 이재명도 아닌 제3주자를 띄울 기미도 없다. 필자는 지금 그들의 분석이 틀렸음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틀린 배경과 동기가 호사가적 충동이라는 게 문제다.
끝으로 이번 총선 최악의 언론 보도를 꼽겠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때문에 투표용지 길이가 50cm를 넘었다'. 첫째, 거대양당의 위성정당 때문에 어차피 준연동형 효과가 없는, 실질적으로 병립형인 총선이었다. 둘째, 비례대표 진입장벽 '3%'는 변함 없었다. 셋째, 투표용지가 길어진 직접적 요인이 뻔히 있는데도 놓쳤다. 득표율 2%에 못 미치는 정당은 등록이 취소되고 당명을 그 다음 총선까지는 못 쓰던 시대가 있었다. 2014년 이 제도가 위헌 판결을 받은 이후 등록 및 출마 정당수는 꾸준히 늘었다. 그리고 길어진 투표지가 나쁜 현상이라고 전제한 기자들에게는 하나를 추가해드린다. 넷째, 길어지면 왜 안 되는가. 투표지 크기가 전지급인 네덜란드는 후진국이고, 한국의 길어진 투표지를 비웃던 북한은 선진국인가. 해당 기자들은 앞으로 오늘의 부끄러움을 잊지 말기 바란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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