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지윤 기자]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 실거주 의무를 3년간 유예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세입자와 집주인 간 갈등 우려는 여전히 남습니다.
세입자가 어렵게 입주한 전셋집의 계약 갱신권 행사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 미리 특약을 만들지 않을 경우 묵시적 갱신과 퇴거 시점을 놓고 집주인과의 분쟁 여지도 있습니다.
전셋값 상승 추세도 꺾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오히려 입주가 시작되는 대단지 중심으로 전세 매물이 나와 전셋값 상승 압력이 완화될 것이란 시장 전문가들의 기대가 꺾였습니다.
분양권 시장 거래가 본격화하면 일부 지역에 한정해 숨통이 트이겠지만, 치솟는 전셋값을 잡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한국부동산원이 4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02%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진은 서울 시내 부동산. (사진=뉴시스)
분양 시장 살린다는 '유예'…글쎄
지난달 29일 국회 법사위원회를 통과한 주택법 개정안 핵심은 '분양가상한제 아파트 실거주 의무 시작 시점 변경'입니다. 기존의 '최초 입주 가능일'에서 '최초 입주 뒤 3년 이내'로 완화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얼어붙은 분양 시장을 살리고자 정부가 내놓은 대책입니다. 최근 주택 분양 경기침체로 예정 프로젝트의 분양 성과 관련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건설업계는 가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채권시장에서 대기업 계열 건설사의 경우 신용보강 등 어렵게 완판에 성공하고 있지만 중소형 건설사의 사정은 미매각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택법 개정안은 지난해 1월 발표한 '1·3대책' 연장선상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당시 정부는 수도권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에 적용하는 최장 5년의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아울러 분양권을 가진 사람이 그 지위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기는 분양권 전매 제한 제도도 완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전매 제한 규제는 시행령 개정 사항이라 최장 10년에서 3년으로 즉시 변경됐습니다. 하지만 실거주 의무는 법적 사항이라 여야 합의 없이는 폐지가 불가능했습니다.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면서 실거주 의무 시작 시점으로 완화됐습니다. 분양받은 사람은 입주 시작 뒤 3년 동안은 전세 세입자를 받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 투기' 차단용인 실거주 의무를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인데 이번 개정안으로 수분양자가 이러한 위험부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에 의하면 현재 실거주 의무 적용 단지는 지난달 말 기준 전국 77개 단지, 4만9766가구입니다. 이 중 11개 단지, 6544가구는 이미 입주를 시작해 실거주 대신 전세를 한번 놓을 수 있게 됐습니다.
개정안이 처리되자 분양가 상한제 적용 단지에선 최근 매물이 늘었습니다. 전셋값도 떨어졌습니다. 정부 기대에 부합한 겁니다.
개정안이 적용되는 대표 단지인 서울 강동구 상일동 'e편한세상 고덕 어반브릿지'의 경우, 네이버 부동산 기준 이날 전세 매물만 60여 건 나왔습니다. 한 달 전 23개, 두 달 전 3개였던 것에 비해 많이 늘어난 겁니다. 전용 84㎡ 기준 전세매물 가격은 인근 '고덕 아르테온' 같은 평형의 지난달 28일 거래가 7억5000만원보다 1억5000만원가량 더 낮아졌습니다.
오는 6월 입주 예정인 강동구 길동 '강동 헤리티지 자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용면적 59㎡는 100여 건 전세 매물이 쏟아졌습니다. 인근 'e편한세상 강동 에코포레' 최근 전세 실거래가보다 약 5000만원 내렸습니다.
오는 11월 중순 입주 예정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 포레온'(옛 둔촌 주공)은 아직 입주가 8개월 정도 남았음에도 전세 매물이 500여 건 쌓였습니다. 월세와의 중복 매물을 고려하더라도 적지 않은 건수입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주택법 개정안은 기존 입주 단지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된다"며 "앞으로 전국에서 더 많은 전세 매물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29일 분양가상한제 아파트 실거주 의무 시작 시점을 기존의 '최초 입주 가능일'에서 '최초 입주 뒤 3년 이내'로 완화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일각에서는 세입자와 집주인 모두에게 더 큰 혼란을 가져온다고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사진은 아파트 모습. (사진=뉴시스)
세입자·집주인 갈등 불씨 우려…전셋값도↑
문제는 적용 기간을 '유예'했을 뿐, 완전한 폐지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에 세입자와 집주인 모두에게 더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란 우려가 제기됩니다.
전세 계약이 2년 단위로 이뤄지는 데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세입자가 2년을 추가 연장할 수 있는 계약갱신권을 가진 만큼 3년 뒤 실거주해야 하는 집주인과의 갈등 불씨가 여전히 남습니다. 일부 중개 현장에서는 전입 신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전세를 놓으려는 불법적인 움직임까지 포착되고 있습니다.
유예 기간이 3년에 그쳐 그동안 필요한 만큼의 목돈 마련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개정안 취지가 무색하게 전셋값이 계속 오르막길인 점도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를 보면 지난달 26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02%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아파트 매매가격이 14주 연속 하락세를 보였지만 전셋값은 상승곡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여전히 치솟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22일부터 41주 연속 상승해 평균 4.35% 올랐습니다.
경기 화성시 등에선 갭 투자 현상까지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기 화성시 병점동 '병점역에듀포레' 전용 75㎡는 지난해 연말 3억원에 거래된 뒤 바로 2억7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세금과 기타 비용을 제외하고, 단돈 3000만원에 아파트를 사들인 겁니다. 서울 성북구 동선동 트라움하임 전용 106㎡는 지난해 12월 전셋값과 500만원 차이에 불과한 3억 2500만원에 팔렸습니다. 갭 투자가 충분히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전셋값이 치솟자 전세가율도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통계청 집계를 보면 지난달 전세가율은 63.6%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8월 63% 이후 5개월 연속 상승세입니다.
지난달 29일 분양가상한제 아파트 실거주 의무 시작 시점을 기존의 '최초 입주 가능일'에서 '최초 입주 뒤 3년 이내'로 완화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원회를 통과했지만, 개정안 취지가 무색하게 전셋값이 치솟는 데다 갭 투자 현상까지 다시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전월세종합지원센터 모습. (사진=뉴시스)
세종=임지윤 기자 dlawldbs2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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