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직장갑질119법을 제안해 본다
2024-02-22 06:00:00 2024-02-22 06:00:00
얼마 전 일본 NHK방송에서 소위 ‘땅콩회항’이라고 불리었던 ‘갑질사건 그리고 사건 이후 10년 동안 한국사회’의 변화라는 주제로 다큐멘터리 방송이 방영되었다. 사건 피해당사자로서 방송 인터뷰를 하며 지난 사건이 떠올라 여러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송 사전 인터뷰로 ‘그럼 박창진씨가 소위 말하는 내부제보자가 되는 용기를 내고난 후 겪었던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왜 여전히 부당한 갑질 사례가 거대 조직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고, 이 부당함에 대응하는 용기 내는 사람은 잘 없는 것일까요’라는 질문이 받았다. 순간 과거로 다시 회귀하여 당시에 겪었던 트라우마로 감정적으로 무척 힘든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순간도 있었지만, 차분하게 다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해 보았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책 하나를 제안해 보고자 한다. 
 
회사와 다툼이 생긴 많은 노동자들의 경우 스스로 회사를 관두는 선택을 하고 있거나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최악의 경우가 많다. 그 배경에는 대부분 힘의 불균형이 있다. 우선 우리나라는 조직과 개인간의 관계 주도권에 있어서 조직의 인사권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는 문화적, 사법적 경향성이 아주 크다. 가령 불이익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면 피해에 대한 증명을 피해자 개인이 해야 한다. 조직에서 당한 불이익의 증거 대부분은 조직이 관리 및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다수다. 개인으로서 조직 내부의 정보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 가령 어떤 권리 침해를 당한 후 회사 CCTV 자료를 조직에 요구했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어떤 조직이 쉽게 그 자료를 내놓겠는가. 
 
조직이 개인을 상대를 압박하기 좋은 방식은 인사권을 발동하는 것이다. 전혀 상관없는 부서 발령, 이전과 다른 업무 배정, 과도한 업무 배정등은 여전히 흔한 개별 노동자 대상의 탄압의 기술이다. 
 
개인적으로, 개인의 권리보다는 조직의 권한에 우선권을 주는 경험을 했다. ‘땅콩회항’ 사건이 발생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개인구제를 도와줄 수 있느냐라는 요청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 사례가 있다. ‘대한항공은 사기업에 해당되므로, 사기업체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안은 국가인권위의 조사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관여할 수가 없습니다. 중략- 귀하의 어려움을 이해하면서도 우리 위원회 조사대상의 한계로 인하여 직접 도움을 드리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아직 개별 노동자가 권리 구제를 원할 때 적극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없다. ‘직장 내 괴롭힘방지법’이 통과되었지만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 감정노동자의 언어·신체적 폭력문제는 해결되고 있지 않다. 많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정신질환을 호소하고, 정신질환 재해 인정건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직장내 괴롭힘방지법은 '방지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사후적 제도이며, 명확한 처별규정도 없다. 신고를 사용자에게 하도록 되어 있어 문제해결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제는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 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 갑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피해자를 지원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직장갑질119법’을 제안한다. 고용노동부 산하에 갑질피해자의 생존을 위해 심리상담, 노무상담을 지원하고, 개별 노동장가 갑질기업과 대등한 협상력 제고를 위한 종합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갑질119센터'를 고용노동부 산하에 두는 것이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는 노동청에 신고를 하도록 신고범위를 넓히고, 만약 피해 노동자가 해고당할 경우, 긴급통상임금 100%를 지원하며 소송 진행 시 소송비용 및 변호사 선임까지 지원하는 법안이 필요하다. 또한 법적 분쟁에서 노동자가 승리할 경우 지원 프로그램에 들어간 비용을 기업에 전액 청구하여 갑질 기업이 피해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직을 상대로 개별 노동자가 권리침해 혹은 여러 내부고발을 했을 때는 진실규명 판단이 확정될 때까지 현재의 지위를 손상하는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다툼 상황에서 진행되는 인사권은 대부분 압박의 수단으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갑과 을의 사이에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정하다는 핑계로 똑같은 증명의 책임까지 강제하는 현재의 방식은 결국 약자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과 같다. 이런 맥락에서 총선을 앞두고 ‘직장갑질119법’을 제안해 본다.
 
박창진 바른선거시민모임 회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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