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챗GPT 그 이후
2024-01-09 06:00:00 2024-01-09 06:00:00
새해에도 인공지능(AI)이 화두입니다. 연초부터 주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은 AI 전략, AI 투자 계획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4'의 핵심 키워드 역시 AI로 꼽히고 있습니다. 챗GPT의 등장 이후 전 산업의 AI화가 화두로 자리잡은 모양새입니다.
 
챗GPT는 알파고 이후 AI기술의 존재를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다만 챗GPT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올해부터는 서비스화된 AI가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 전망입니다. 기존에 활용하던 운영체제(OS), 소프트웨어, 데스크톱은 물론 냉장고, 에어컨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전자기기와 가전에 AI가 접목될 예정입니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AI인지 일반 대중들이 알아채기 힘들 것이란 점입니다. 기존의 기술 혁신과는 조금 다른 지점인데요. 기존에는 기술을 시각적으로 좀 더 분명하게 체감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자동차나 스마트폰이 발명됐을 때를 떠올려볼까요. 사실 대중이 인식하게 되는 대상은 기술 그 자체라기보다 기술을 담아내는 대표적인 그릇들이었죠. 덕분에 기술 발전의 정도를 좀 더 쉽게 인식하고 기술을 직접 활용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가령 OS가 발전을 거듭할 때 스마트폰과 컴퓨터라는 단말이라는 그릇 안에 수렴됐기 때문에 우리가 손으로 만지고 제어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사용하는 기술에 대해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셈이죠.
 
AI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2010년대 초반 클라우드가 처음 국제 전시 등을 통해 소개됐을 때가 떠오르네요. 클라우드 역시 처음에는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렸지만 다행히도(?) 서비스 대중화에 이르기까지 10년 이상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즉 대중에게 클라우드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셈이죠. 하지만 AI는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 CES 주제 '올 투게더, 올 온(All togeter All on)'은 AI의 빠른 확산에 대한 일종의 예고편과 같은 느낌을 주는데요. 인터넷과 OS 등을 기반으로 이미 충분히 연결돼 있는 세상에서 모든 기술이 활성화(on) 될 것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바로 AI를 바탕으로요.
 
AI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일상에 파고들 겁니다. 이처럼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빨라지면 철학적 논의가 설 곳이 좁아집니다. AI기술에 뒤따르는 질문이 적지 않은 데도 말이죠. 물론 해외에서 AI 윤리 문제, AI에 따른 일자리 감소 문제를 두고 이미 설왕설래하고 있지만 기술의 발전에 비하면 그 속도는 한없이 더디게만 느껴집니다. 국내는 어떤가요. AI를 둘러싼 철학적 논의는 좀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AI를 둘러싼 기술 철학에 대해 더 늦기 전에 우리도 진지하게 숙고해보자고 한다면, 아마도 AI 기술의 촉발도 늦은 마당에 한가한 소리 한다고 취급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를 더 늦출 수 없습니다. AI는 당장 코 앞에 닥친 현실이자, 너무나 중차대한 영향력을 오랫동안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죠. 철학 없이 빠르게만 발전하는 AI기술은 겉잡을 수 없는 파국을 낳을 수 있습니다. 또한 철학 없는 기술은 결국 자본력을 중심으로 수렴되고, 결과적으로 시장의 논리대로 가버리게 돼죠.
 
그래서 국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더 늦기 전에 AI기술 철학에 대한 논의의 장을 정부가 앞장서서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가야 할 방향은 사실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만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있는 만큼 민주적인 절차를 통한 논의와 합의, 약속이 필요합니다. 산업의 발전을 해하지 않으면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는 길로 가기 위해서 말이죠. 지금 정부가 ICT 분야 정책에서 일순위에 두고 추진해야 할 일은 개별 기업이나 특정 산업군에 대한 규제보다는 산업 전 분야에 걸칠 기술에 대한 철학적 논의 과정, 민주적인 합의 과정을 마련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나볏 중기IT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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