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시민에게 도발적인 군 정신전력 교재
2024-01-02 06:00:00 2024-01-02 06:00:00
올해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정의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기로 했을 때가 군 정체성에 빨간 불이 들어 왔다. 당시 논란의 맥락을 살펴보면 국민의 정신과 국군의 정신은 다르다는 인식이 발견된다. 홍범도 장군이 독립 영웅이기는 하지만 장교를 양성하는 군 교육기관에 좌익 경력이 있는 홍범도 흉상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에 그런 인식이 드러나고 있다. 국민의 정신과 군의 정신이 마치 따로 있다는 주장은 군 스스로 자신을 특수화하면서 일반 사회규범으로부터 예외적인 존재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험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군인도 전문 직업집단으로서 사회의 일원이라는 의식은 희미해지고 마치 국가를 책임지는 높은 지위로 스스로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해병대원 채수근 상병의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에서 정상적인 법규정을 초월하여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사건 수사에 직접 개입하는 또 하나의 예외주의로 재현되었다. 이 역시 특수한 집단인 군에 대해 부당하게 지휘권을 남용하는 직권 남용 소지가 충분했다.
 
군에 대한 인식에 하나둘 문제가 쌓이던 중 국방부가 12월에 발간한 장병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는 단연 압권이었다. 교재에 따르면 북한의 3대 세습과 경제난 등의 문제에 침묵하거나 무비판적으로 북한을 추종하는 “내부의 위협”에 대해 기술한다. 지난 정부에서는 이를 “종북 세력”이라고 하더니 현 정부에서는 “공산 전체주의”로 불리는 세력을 위협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교재로 장병들을 교육하면 누가 과연 내부의 위협인지 관심이 고조될 것이고, 그 연장선에서 군 간부들은 신문의 정치면도 더 관심 있게 보게 될 것이다. 당연히 북쪽의 휴전선을 주시해야 할 관심이 반대편인 후방으로 향하게 되고, 이 관심이 더 증폭되면 총구가 북한이 아닌 시민을 향하게 될 끔찍한 상상도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에서 장병 정신교육이 내부의 위협을 강조하니까 장병들을 불온 문서로부터 차단한다며 금서 목록이 전 부대에 하달되었다. 북한의 허접한 여성 간첩이 육군 장교와 교제하며 군사기밀을 탐지했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도 나왔다. 급기야 군 사이버사령부가 이명박 대통령을 찬양하고 야당을 비난하는 데 직접 뛰어드는 댓글부대 역할도 했다. 국방부 산하에 정신전력원을 창설하여 군 정신교육을 더 강화한 박근혜 정부에서는 기무사령부가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계엄 선포를 계획하고 그 실행방안을 준비하는 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군 정보기관이 나서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한 사건은 덤으로 얹어졌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망령이 다시 부활하는 가운데 군이 전방이 아닌 내부의 적을 의심하고 적대감을 고조시키는 현상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게다가 교재에서는 역사 침탈을 자행하는 일본에 대해 한없이 너그럽게 묘사하면서 군사독재의 폐해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건너뛰고 이승만을 독립 영웅으로 추대하는 이데올로기 편향성도 보여 준다. 누가 보아도 극우 뉴라이트 계열의 문서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대학의 교수가 집필하던 기본교재를 이번에는 현역 장교들이 직접 작성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들의 역사 인식이 이토록 저열하다면 그 지휘를 받는 장병들의 암울한 처지를 더 말해 무엇하랴. 이렇게 되면 우리 군은 국민의 군대가 아니라 보수우익의 군으로 전락하게 된다. 군이 정치화되는 극단에는 총구가 시민을 향하게 된다는 비극이 기다린다.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군 예외주의 사고방식이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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