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력자를 타락시키는 과잉의전
2023-12-27 06:00:00 2023-12-27 06:00:00
 의전’(儀典).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습니다. 기관장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나 선출직에 제공되는 의전을 직접 받아 보지 않고는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피상적으로 행사장에 입장하는 순서나 테이블에 앉는 자리 위치 정도가 의전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의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해진 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이고 또 하나는 ‘귀빈을 예우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첫 번째 ‘행사의 격식’을 의전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번째 ‘귀빈 예우’가 의전의 핵심입니다.
 
공공부문에서 의전은 기관을 대표하고 경영을 책임지는 기관장에게 부여되는 편익이자 특전입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막중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기관의 수장이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도록 도와주고 지원하는 역할에서 의전이 출발합니다. 통상적으로 기관장 의전은 여비서 1명, 수행비서 1명, 수행기사 1명으로 최소 3명이 전담합니다. 서울과 지방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기관은 인원이 배로 늘어납니다. 장관급 이상이 되면 보좌관 등의 스텝이 추가돼 규모가 확 커집니다. 이들은 기관장의 수족과 같이 움직이며, 회의 및 면담 일정부터 연설문 작성까지의 모든 일을 도맡아 담당하고 처리합니다. 
 
이런 의전이 어쩌다 기관장을 맡은 사람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누군가 항상 옆에 붙어 있고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니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지 못합니다. 외부에서 이동할 때는 한 차량에 기사, 수행비서 등이 같이 타고 다니니 전화 통화 하나도 편하게 할 수 없습니다. 중간에 휴게실에서 화장실 갈 때도 수행비서가 동행하니 느긋하게 큰일(?)을 보기도 어렵습니다. 밤늦게 술자리가 이어질 때는 밖에서 기다리는 수행원들이 신경 쓰여 뒷골이 묵직해집니다. 친구들과 편히 저녁 하는 날에는 일찍 집에 와 수행원들을 돌려보내고 다시 나오기도 합니다. 
 
의전이란 외투와 같습니다. 평소에 혼자 홀가분하게 다니다가 의전을 받으면 몸에 안 맞는 겉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진다는 것입니다. 의전이 없어지면 외투를 벗고 다니는 듯 허전해합니다. 오랫동안 기관장을 하던 분이 퇴직해 아쉬운 게 뭐냐 물으니 의전을 못 받는 것이라 합니다. 의전이 없어지니 갑자기 허허벌판에 혼자만 내 버려진 듯 외롭고 처량한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어디에 연락하거나 약속을 잡을 때 비서를 통하지 않고 직접 해야 하니 힘들기도 하지만 품위가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행사장에 갈 때 수행원 없이 들어가고, 나올 때 기사가 차를 대령하지 않는 것을 어색해합니다. 전직의 서글픔을 느끼는 순간이 행사 후에 차를 찾으러 혼자 주차장으로 걸어가던 시간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의전에 익숙해진 분은 대기업 사외 이사를 맡을 때 차량과 기사 지원을 요청한 적도 있습니다.
 
이와같이 의전은 중독성이 강합니다. 한번 맛보면 버리지 못합니다. 자리가 높아지고 권력이 커질수록 더 세고 강도 높은 의전을 원합니다. 권력자의 의전중독증이 심해질수록 과잉의전이 행해지고, 이런 과잉의전이 심기의전으로 발전해 권력자를 타락시키고 부패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흔히, 업무 실패는 용납되어도 의전 실패는 용서가 안 된다고 합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의전이란 매우 무서운 말입니다. 기관의 중심이 업무보다 의전으로 옮겨가고 기관의 모든 일은 기관장 한 사람만을 위해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과잉의전은 기관장에게 권력의 힘을 맛보게 하며 더 나아가 이를 행사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만듭니다. 
 
기관장이 의전을 오래 받으면 자기중심적 최면에 걸립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만을 위해 헌신한다는 관념을 갖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부릴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기관장 자신이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순간 공감능력은 사라지며 甲질을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더 높은 고위직으로 올라가 더 큰 권력을 가지면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환상에 사로잡힙니다. 그럼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며 편법적이거나 탈법적 욕구를 분출합니다. 
 
민주 운동가, 인권 변호사, 시민단체 대표. 우리 사회의 정의와 양심을 상징하는 사람들이 공직이나 선출직에 올라가 오래 권력을 누리면서 과잉의전에 길들어 특권의식을 갖게 됩니다. 처음에는 소박하고 소탈하게 시작한 분들이 나중에 성 추문이나 비리에 연루되어 추한 모습을 보이며 사라집니다. 과잉의전을 경계하고 배격하여 끝까지 초심을 유지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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