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에서 주유의 책략으로 조조가 자신의 수군을 지휘하는 장수의 목을 치는 장면은 지략의 백미로 꼽힌다. 멀쩡하게 수군을 잘 지휘하던 장수가 사라졌으니 이후 조조의 수군은 오합지졸이 되고 말았다.
필자는 지난 10월에 대장을 전원 물갈이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보면 왠지 윤 대통령이 적벽대전을 앞둔 조조와 같은 선택을 하는 것 아닌지,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다. 멀쩡히 잘 근무하던 대장의 임기를 채우지 않고 해군작전사령관을 1년도 채우지 못한 삼성 장군을 무리하게 대장으로 진급시켜 합동작전을 맡겼으니 말이다.
11월이 되자 난데없이 용산은 5년 2개월 동안 잘 유지되어 오던 9·19 남북 군사합의서를 무력화했다. 이 역시 조조가 제갈량의 책략으로 화살 10만 개를 적에게 넘겨주는 것과 같은 지략의 실패처럼 보여진다. 남북한 간에 재래식 군사력의 우발적 충돌을 막는 마지막 안전판이 이 군사합의서다. 수십조 국방예산으로 달성하지 못한 안보를 포기하자 북한은 즉시 군사분계선 일대에 대규모 화력과 신형 장비 배치를 예고했다. 때마침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초대형 방사포를 비롯한 신형 포병화력을 증강하고 있는 시점에, 이 장비들의 전방 배치 명분을 제공한 게 왠지 께름칙한 거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 꾀에 빠지는 것 같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정치가 마비되고 경제와 민생이 추락하면서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파국의 위기에 직면하지 않은 이유는 한반도 안보상황이 비교적 안정되었다는 점에 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정전협정 위반사례가 현저히 감소하면서 접경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고, 남북 간에 군사적 충돌 조짐은 전혀 없었다. 누가 뭐래도 남북 군사합의서의 효과다. 작년 12월에 북한의 무인기가 남한 영토를 침범하고 탄도미사일이 울릉도와 포항 근처의 공해에 탄착된 사례가 엄중한 남북관계의 현실을 일깨우기는 했지만 한반도 정전협정은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으로 유지된 편이다. 이 합의서가 “사문화되었다”는 정부 설명과 달리 이 협정은 엄연히 살아 있으며, 남북 간의 국지적 충돌을 막는 마지막 안전판이었다. 그걸 제거했으니 문재인 정부 이전으로 안보상황이 후퇴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 모든 현상은 전문성과 합리성을 기초로 한 신중한 안보정책을 버리고 “힘에 의한 평화”를 종교처럼 신봉하며 이데올로기의 절대성과 북한에 대한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정치적 의도로부터 나왔다. 특히 군을 전원 물갈이하면서 이제 권력에 직언할 수 있는 장군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2018년에 합의서를 체결할 당시에 군의 준비태세에 이상이 없다는 평가를 기초로 신중하게 군사합의서를 체결한 군이다. 올해 8월에는 북한의 정찰위성이 “군사적 가치가 없다”며 평가절하했던 군이다. 그런데 입장을 180도 바꿔서 북 정찰위성이 “심각한 위협”으로 돌변하고 군 장병의 안전에도 위험을 초래할 군사합의서 무력화에 동의한 군은 일관된 소신을 지킬 의사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가뜩이나 민생이 고달픈 시기에 안보까지 불안해지면 내년에 대한민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일단 접경지역과 북방한계선(NLL) 일대로부터 불안이 고조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저성장과 침체, 불안과 혼란이 고조되는 가운데 내년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권력은 이런 상황이 더 유리하다고 보는 것 아닌가. 극우 포퓰리즘은 침체기에 서민들로부터 더 큰 호응을 얻었다는 게 역사적 교훈이다. 조조가 적벽대전에 패했다고 권력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국가는 실패해도 권력은 실패하지 않는다. 그게 어쩌면 진정한 목적일지도 모른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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