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울 환자, 부산 의사'
2023-11-07 06:00:00 2023-11-07 06:00:00
우리 정당사에는 여야를 불문하고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느 정당이건 당대표 리스트에 똑같은 이름이 있다는 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당 대표에 한 사람 건너 꼴로 혁신위나 비대위라는 이름의 ‘대표’가 등장한다는 얘기다. 선거에 지거나 당에 문제가 생겨 몸살을 앓으면 꼭 비대위나 혁신위가 뜬다. 당헌당규에 따라 전당대회를 열어 새 대표를 뽑는 게 아니라 습관처럼 비대위나 혁신위를 만든다. 반성문 쓰듯 “전권 부여, 새롭게 태어난다”는 다짐도 수 십년 째 똑같다. 전시용 쇼우윈도같다. 
 
위기 상황에서 시선과 책임을 분산-회피할 요량으로 출범시키는 임시체제는 백 번을 반복해도 그 자리일 수밖에 없다. 의원정수 축소나 세비 감액, 불체포특권 폐지, 다선 의원 용퇴와 출마지역 변경…어느 당 따질 것 없이 내놓는 단골 처방인데, 20년 전 신문에도 그대로 나온다. 뭐가 새롭다고 감동이 있겠는가. 감동은커녕 아직도 그 타령이냐며 반감만 부른다. 
 
잦아지다 보니 그러겠지만, 혁신위나 비대위의 장을 고를 때 기발성과 의외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갈수록 강해진다. 대개 당 밖에서 영입한다. 그래야 뭔가 새로워 보일 거라고 여겨서일 게다. 
 
말로는 전권 부여지만 권력투쟁과 눈치 살피기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 득시글대는 정당판에 외부인이 갑자기 시집와서 난마를 어떻게 풀겠는가. 그런 초능력자가 흔할까. 영입된 장들은 그 당의 실질적 지배자나 계파 실세들 심기 살펴가며 뭔가를 모색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심기 살피거나 눈치보는 걸 언론이나 국민에게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점. 애시당초 잘해야 본전 하기도 어려운 자리다. 그러니 내놓는 대책이란 게 20년 전과 똑같다.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장은 박근혜(천막당사와 말뿐이었던 경제민주화), 김종인(민주당실세 공천 배제) 정도다. 
 
비대위나 혁신위는 과도체제이자 임시체제다. 내놓는 처방이라는 게 결국은 그 정당에 몸담은 사람들이 실천해야 하는 건데, 그들의 이해관계는 온존된 상태니까 혁신책이란 게 태생적 한계를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실패는 불가피하고, 비대위나 혁신위는 한 번 건너 꼴로 필요했던 것이다.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가 1~3호 혁신안을 내놨지만 묵살되거나 당사자들 반발을 샀다. 엊그제 이준석 전 당대표를 만나러 부산까지 갔는데 이 전 대표는 2.5m 면전에서 영어로 “Mr. Linton”이라 호칭한 뒤 “당신은 여기 올 자격이 아직은 없다, 환자는 서울에 있다”며 면담을 거부했다. 공개적으로 그랬으니 쭈뼛거리고 민망했을 텐데, 그래도 인 위원장이 겉보기에는 의연하게 자리를 떠나는 게 인상적이었달까. 
 
민주당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재명대표가 발표했던 이래경혁신위는 정체성 시비로 시작도 못 한 채 사퇴했고, 뒤를 이은 김은경혁신위 역시 몇 가지 방안을 내놨지만 그동안 언론에서 지적된 것들에 번호매겨 발표하는 재탕삼탕 수준이었다. 결국 노인폄하 말실수 통에 스타일만 구기고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졌다. 그 이전의 박지현비대위는 분란만 증폭시키다 결과적으로 안 하느니만 못한 참담지경을 겪었다. 우리 정당과 정치의 수준이 고스란히 반영된 자화상이다. 
 
그간의 사례를 보면 위원장이 당 사람이냐 밖의 사람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떤 원칙과 철학을 갖고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것인지가 성패의 핵심이다. 혁신안이나 비상대책이 명실상부하지 못했기에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반동’이 재현됐고, 또 다른 혁신위/비대위가 재등장하는 쳇바퀴가 반복된 것이다. 외부에서 장을 데려와 고치려던 것 자체가 정치권에 ‘자가 개혁능력’이 없다는 자백이기도 하다. 비대위의 요체는 한 가지라도 확실히 바꾸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시스템으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1품 식당’을 권한다. 무슨 반찬이 됐건 한 가지만이라도 확실히 잘 만들면 그 식당은 문전성시다. 이것저것 여러 접시 만들려 하지 말고, 국민들이 답답해하는 거 딱 하나만 골라서 야무지게 고칠 것을 주문한다. 습관처럼 들어서는 혁신위나 비대위는 습관처럼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강윤 정치평론가-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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