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소아과 오픈런, 의사만 늘린다고 사라질까
2023-10-31 06:00:00 2023-10-31 06:00:00
일요일 새벽 5시55분.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오전 6시부터 시작되는 동네 어린이병원의 진료 예약을 위해섭니다. 대학 시절 수강신청 만큼이나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6시 정각이 되자마자 분주히 손을 놀립니다. 다행히 예약에 성공을 했고, 진료가 시작되는 오전 9시에 맞춰 병원을 찾았습니다. 이미 만차가 된 주차장에서 짐작을 했지만 역시나 병원 진료 대기실은 아픈 아이들과 보호자들로 가득합니다. 이제 막 첫 진료를 시작한 4개의 진료실은 모두 대기 환자가 40명이 넘게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날은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한밤중 열이 난 아이 덕분에 오전 6시부터 가능한 모바일 예약을 시도할 수 있었고, 대기번호 4번을 받은 덕에 병원 체류 시간을 한 시간 안쪽으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픈 아이를 차에 태운 채 주말 진료를 하면서 현장 접수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동네를 전전했을 것입니다. 가까스로 접수를 했더라도 병원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쳤을 것입니다. 
 
이날 저의 경험이 특별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2023년 현재 아이를 키우는 대한민국 부모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상황입니다. 그나마 의료 인프라가 괜찮은 편인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갈 수 있는 병원의 수라도 많지, 지방에서는 평일에도 차로 30분가량을 달려야 소아과를 갈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일반 병원의 상황도 이러한데, 소아 응급실은 더 말할 것도 없겠죠. 
 
전쟁 같은 일요일 아침을 보내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문득 얼마 전 만났던 지인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딸아이가 재수 끝에 지방 의대를 가게 됐는데, 동기 중에 막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7번의 도전 끝에 의대에 합격한 장수생도 있었다 합니다. 수능 점수를 기반으로 한 대학 배치표를 보면, 전국에서 커트라인이 가장 낮은 의대의 점수가 서울대 공대보다도 높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서울의 대학병원 인턴 자리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전문의 자격증을 따지 않고 '페이닥터'로 눌러앉는 의대 졸업생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대부분이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이른바 '돈 되는' 병원들로 몰린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고요. 
 
이 같은 현실은 수치로도 증명되고 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인기 진료과로 꼽히는 '피안성정재영'(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분야에서 근무하는 일반의 수가 2017년 말 128명에서 올해 9월 말 기준 245명으로 6년여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이 중 절반 이상인 160명이 피부·미용 분야인 성형외과와 피부과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의대 정원 확대'라는 구호만으로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의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얼마나 단순한 발상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아과를 비롯한 필수과목 기피 현상을, 지방의 의료 인프라 붕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의대 정원 확대는 그저 의료 기술자들을 대량 생산하는 방책에 그치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지금도 대치동을 비롯한 주요 학원가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의대반'이 성업을 이루고 있습니다.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이 발표된 이후에는 유치원생으로까지 의대반 '영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수재들이 의대로만 몰리는 국가적인 자원 낭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세밀한 정책 로드맵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김진양 국회팀장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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