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는 시대는 이제 저물고,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시대가 왔다. 매년 가트너(Gartner), 포브스(Forbes),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등 국내외 주요 기관은 전 세계를 주도하는 미래 기술을 10개씩 선정해서 발표하는데, 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 AI, 메타버스, 클라우드, 빅데이터, 웹3.0(Web 3.0) 등 디지털 대전환기를 주도하고 있는 기술이 주를 이룬다.
디지털 기술들이 발전하면서 전 세계 누구 하나 빠짐없이 AI에 대한 의존성이 심해졌고 개인정보 역시 추적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게 공유되고 연결되었다. 그야말로 초연결사회이자 빅데이터 기반의 플랫폼 사회가 구축되었다. 다만, 동시에 정보 격차와 온라인 의존성은 커지고 있고, 결과적으로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가 넘치는 디지털 격차 사회가 되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2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의하면 장애인, 고령층, 저소득층, 농어민 등의 계층이 일반 국민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진다. 구체적으로 일반 국민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을 100으로 할 때, 장애인은 82.2, 고령층은 69.9, 저소득층은 95.6, 농어민은 78.9로서 이러한 디지털 취약계층은 평균 76.2로서 일반 국민의 80% 미만 수준이다.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시대에 이렇게 디지털 격차가 심해지는 경우 자본주의 시대에 소득 격차가 발생하는 것 이상의 인간적 소외감과 기본권에 대한 박탈감이 초래될 수 있다.
디지털 대전환기에 도래한 만큼 디지털 주권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EU와 미국은 이미 디지털 권리 및 AI에 대한 권리장전을 발표한 바가 있는데, 다행히 우리나라 역시 지난달 말 디지털 권리장전을 발표하였다.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권리장전에서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자유와 권리 보장, 디지털에 대한 공정한 접근과 기회의 균등,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사회, 자율과 창의 기반의 디지털 혁신의 촉진, 인류 후생의 증진 등 총 5가지를 기본 원칙으로 제시하였다. 디지털 권리장전의 내용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인간 기본권에 준하는 수준으로 디지털 주권을 포섭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고, 정책 및 입법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인간 중심의 디지털 대전환을 위해서는 선언적 의미의 디지털 권리장전을 넘어서 보다 체계적이고 구속력 있는 윤리적 기준 및 법·정책적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의 윤리적 기준과 관련하여서 국내외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인권보장, 프라이버시 보호, 다양성 존중, 데이터 관리, 투명성 등을 핵심 윤리적 기준의 요건으로 발표한 바 있고 이러한 윤리적 기준 하에 조속히 정책 및 법령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물리적?경제적으로 디지털에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고 디지털 역량을 함양하여 결과적으로 모두가 향상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강병원 국회의원과 박성중 국회의원은 ‘디지털포용법’을 발의하였으나 아직은 시행되지 못하고 계류 중에 있다. 다만, 위 ‘디지털포용법’은 디지털 약자를 보호하고 디지털 주권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좋은 취지에서 만들어졌으나, 디지털 '표용'이라는 시혜적이고 온정주의적인 접근보다는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기본적인 권리로서 디지털 주권을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권리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한, AI 등 디지털 기술은 개별 국가에 국한되어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므로 국제적인 규범에 맞는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보다 체계적인 법령 정비 역시 필요할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고 있는 현재, 정책과 법률은 기술의 이로움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위험 등에 대하여 방향성을 제시하여야 한다. 디지털 주권의 보장이라는 대원칙하에 조속히 정책과 법령이 정비되어 법적 공백이 최소화되길 바란다.
안희철 법무법인 디라이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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