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디지털 대전환기, 과학자와 공학자의 깊은 한숨 소리
2023-09-08 06:00:00 2023-09-08 06:00:00
영화 ‘오펜하이머’가 화제다.
 
인류 사상 초유의 초거대 과학기술 연구개발(R&D)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잘 그려 냈다는 호평도 있고, 원자폭탄이 터지기 전에 본인의 방광이 먼저 터질 뻔했다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너무 길고 지루했다는 평도 있다. 영화의 평이 어떻든 오펜하이머가 큰 인기를 끌면서 많은 대중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과학자, 공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현재 변호사이지만 학부는 물리학을 전공하였고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태양계 플라즈마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던 물리학도였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과학기술과 연관된 업무를 많이 하게 되었다.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여 실용화 하는 스타트업을 위한 법률 자문, 기술 사업화 법률 자문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제주에서 열린 ‘정부출연연구기관 기술사업화 컨퍼런스’에 참석하여 200명이 넘는 국가 출연 연구소의 연구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해당 컨퍼런스에서도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한 이야기가 꽃을 피웠는데 흥미로운 대화가 끝나고서는 다들 깊은 한숨을 쉬었다. 우리나라의 내년 연구개발(R&D) 예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올해 연구개발 예산은 약 31조 8000억원이었는데 ‘R&D 카르텔’이 지적된 이후 정부는 내년 연구개발 예산을 약 25조 9000억원으로 편성하였다. 올해에 비해 무려 16%가 줄어든 예산이며 33년만의 연구개발 예산 삭감이다. 사상 초유의 삭감이라 할 수 있다. 국가의 주요 과학기술 연구를 책임진다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주요 사업비는 올해 약 1조 1848억원에서 내년 약 8859억원으로 무려 25.2%가 삭감되어 그 심각성은 더 크다. 과학자와 공학자의 깊은 한숨이 이해가 간다.
 
국가 예산은 매년 총액이 정해져 있어서 어느 한 분야의 예산이 늘면 어느 한 분야의 예산이 상대적으로 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야에 따라서는 반드시 최우선적으로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분야가 있다. 그것이 바로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이다. 내년도 전체 정부예산이 2.8%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최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연구개발 예산을 오히려 삭감시킨 것은 단순히 예산을 줄인 것을 넘어서 연구개발을 오히려 최후순위 가치로 두었다는 것을 말한다.
 
삭감의 주요 이유는 연구개발 카르텔의 예산 나눠 먹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 번 양보하여 연구개발 예산을 사용하면서 일부 비도덕적이거나 비합리적인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문제는 총 예산을 각 구체적인 연구개발 분야에 배정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의 문제다. 전체적인 예산 삭감까지 나아갈 것은 아니었다.
 
양자역학의 태동기인 1920년대 아인슈타인, 막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마리 퀴리 등 현대과학의 전설들이 모여서 찍은 솔베이 회의의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까지의 기간에 세계 주요 종교와 철학이 등장해 인류 사상사의 중심(축)을 이뤄와서 그 시대를 인류 역사의 ‘축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현대 과학에 있어서는 1920년대가 ‘축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지금은 과학과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AI, 빅데이터 등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이다. 핵융합이나 우주개발 등 초거대 과학과 공학의 시대가 되었고, 인류 과학과 공학의 역사에 있어 또 다른 ‘축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새로운 ‘축의 시대’가 도래한 현재, 전 세계는 총성 없는 과학과 공학, 기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시간 현재 한국의 수많은 과학자와 공학자, 혁신가들은 조용하지만 묵묵하게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들이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과 예산을 조성해 주는 것만이 그들의 이러한 노력을 조금 더 가치 있게 만들어 줄 방법이지 않을까. 그들의 한숨 소리 보다는 환호 소리가 들려오기를 바란다.

안희철 법무법인 디라이트 파트너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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