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약한 회장 무게감에 정경유착 재발 우려까지…삼성, ‘전경련 복귀’ 신중
재계 70위권 풍산, 대기업 단체 이끌기엔 무리 시각
방산 기업으로 정권 휘둘릴 가능성…정경유착 심화 우려도
삼성 준감위, 18일 재회의서 재가입 논의 예정
2023-08-17 15:31:15 2023-08-17 16:39:41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여러 기대와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빈약한 회장의 무게감에 정경유착 재발 우려도 그 중 하나입니다. 4대 그룹의 전경련 재가입에 앞서 분명한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6년 만에 전경련 복귀를 고민하고 있는 삼성의 행보가 무엇보다 중요해졌습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오는 22일 임시총회를 열고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통합해 새 명칭인 '한국경제인협회'로 새롭게 출범합니다. 4대 그룹은 국정농단 사태 후 전경련에서 탈퇴했지만 한경연 회원 자격은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이번에 전경련이 한경연을 흡수통합하면 한경협에서 회원사 지위가 이어지게 됩니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사진=연합뉴스)
 
'대기업의 모임' 수장으로 무게감 미흡…방산업 정경유착 우려 
 
한경협으로 새 출발하는 전경련의 수장은 류 회장이 맡게 됩니다. 하지만 풍산의 재계 순위가 70위권이라는 점에서 재계를 이끌기엔 무게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앞서 전경련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초대 회장을 맡은 데 이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구자경 LG그룹 회장,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허창수 GS 명예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이 이끌어왔습니다. 이런 탓에 전경련은 재계를 대표하는 '대기업의 모임'으로 불려왔습니다.
 
류 회장은 '은둔의 경영자'로 불릴 정도로 언론 노출이 적은데요. 재계 순위까지 70위권인 그룹의 회장이 전경련의 최대 과제인 4대 그룹의 재가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재계 안팎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풍산이 방산 기업인 탓에 정부의 입김에 따라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업계 관계자는 "최대 고객이 국방부를 포함한 정부, 해외이기 때문에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전했습니다.
 
풍산의 경우 국방부에 독점적으로 탄약을 공급하는 등 방산 사업을 영위합니다. 그 외 동판, 동봉, 소전 등 제품 분야에서 국내 1위로 사실상 독점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경련 쇄신에도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전경련은 명칭까지 바꾸면서 쇄신하겠다고 변화를 약속했지만 경제 분야와는 거리가 있는 비전문가들이 지도부로 채우면서 정경유착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인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이 전경련 상근고문으로 남고, 류 회장이 전경련 상근 부회장으로 외교부 출신 관료를 영입할 전망입니다. 
 
정치권 관계자는 "애초에 윤석열캠프 출신인 김 대행을 전경련에 앉혔다는 것 자체가 경제계에 오더를 내리겠다는 의미"라며 "그동안 전경련이 재계의 대정부 로비 창구로 기능해왔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신 정경유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전경련은 윤석열정부의 암묵적인 지원을 등에 엎고 활동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한일·한미 정상회담 동행을 주관하는가 하면 지난 7월 한일 정상회담 때는 정부의 강제징용 관련 제3자 배상안 추진하는 등 정부와의 코드 맞추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전경련의 정경유착에 대한 의구심은 재계 안팎에서도 쉽게 불식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전경련은 과거 정부와 재계 간 가교 역할을 자처하면서 국정운영 협조 취지로 정부 요구에 따라 기업들의 지출을 요청했는데요. 이같은 행위 자체가 기업 입장에선 강요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적잖았습니다. 
 
연장선에서 전경련이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건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경련은 청와대 요구로 사태의 발단인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에 필요한 거액의 자금을 회원사들이 출연하게 하는 데 관여했는데요. 청와대로부터 친정부 성향 보수단체들을 지원하라는 압박을 받고 자금을 집행하는 등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전경련의 이러한 정경유착 행보가 대중적 이미지를 실추시켰고, 문재인정부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에 밀려 패싱 당하는 수모를 겪은 바 있습니다. 여론의 질타까지 더해지면서 4대 그룹인 삼성, SK, 현대차, LG가 전경련을 줄줄이 탈퇴했고 '재계 맏형' 역할을 했던 전경련의 위상도 추락했습니다.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의 모습.(사진=연합뉴스)
 
삼성 6년 만의 복귀 논의 '조건부 승인' 전망…복귀 명분은 부족 
 
이런 가운데 삼성은 6년 만의 전경련 복귀에 대한 논의를 공식화하고 있습니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가 복귀에 찬성하더라도 출연금과 활동에 대한 내부통제 강화 등 정경유착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할 거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찬희 준감위원장도 전날(16일) 회의에 앞서 삼성의 전경련 재가입 시 가장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 "삼성이 과연 정경유착의 고리를 확실하게 끊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것"이라고 언급했는데요.
 
애초 16일 임시회의에서 조건부 승인이 날 것으로 예상됐으나, 위원들 간의 의견을 조율하지 못했습니다. 정경유착 재발 여론을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이에 따라 '향후 전경련에 국정농단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경우 회비 납부를 중단한다'는 조건부 승인을 명시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준감위는 18일 오전 재회의를 열고 전경련 재가입을 논의합니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전경련 복귀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습니다. 삼성의 결정이 나오면 SK, 현대차, LG도 복귀 논의에 속도를 낼 전망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전경련 복귀 여부에 대해 "잘 되기를 기대하고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은 돕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재계 안팎에서 4대 그룹이 전경련에 복귀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14일 성명을 통해 "4대 그룹이 전경련에 다시 가입할 어떠한 명분도 없다"며 "전경련이 정경유착에 대해 정말 반성하고 쇄신을 하고자 한다면 이번과 같이 구시대적인 세불리기용 꼼수 행보를 중단해야 한다"고 규탄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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