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 대학은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학령인구 감소와 더불어 15년이나 지속된 등록금 동결로 대학의 재정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대학이 일상적 운영도 버거워하면서 연구와 교육에 대한 투자도 멈춰 섰습니다. 첨단기술 산업시대에 우리나라의 유일한 자원인 인력의 양성을 책임지는 대학이 침체되며 국가경쟁력도 훼손될 것이 우려됩니다.
이에 대학의 재정을 지원하여 혁신을 유도하는 정책이 추진 중이며, 대표적 사업은 ‘글로컬대학30’입니다. 2026년까지 지방대 30곳을 지정해 학교당 5년간 1000억원을 투입하여 세계적 수준의 대학을 육성한다는 것입니다. 총 3조원에 달하는 파격적인 국고를 지원하는 글로컬대학에 지정되기 위해서는 ‘혁신성’이 가장 중요한 요건입니다. 후보 대학은 학사구조의 유연화, 학과·학문 간 벽 허물기, 대학의 통폐합, 개방적 대학 의사결정 체제 운영 등과 같이 기존 대학 운영의 공식을 혁파하는 도전적 과제를 제안해야 합니다.
당연히 필요하며 타당한 혁신과제이지만 무엇인가 빠진 느낌이 듭니다. 세계 일류대학과 우리 대학의 차이점이 많지만 가장 근본적 차이는 지배구조입니다. 우리 대학이 침체하고 낙후된 것은 외부 환경의 변화보다 내부 지배구조의 폐쇄성과 비효율성에 기인합니다.
대학의 지배구조 최상단에는 재단과 이사회가 있습니다. 사립대학은 재단이 이사회를 장악하고 대학을 통제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학의 발전과 재단의 이익이 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대학 재단은 양적 확장에 관심이 큽니다. 그래 지난 수십년동안 각 대학이 학과와 정원을 늘리며 규모를 키웠습니다. 그건 대학 수입과 직접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학의 질적 발전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일류 대학으로 발전하겠다는 비전은 홍보성 구호에 불과합니다. 대학 발전에 필요한 투자를 하려면 재단의 출연금이 늘어나야 합니다. 대학이 일류가 되면 인건비와 운영비 부담이 커집니다. 게다가, 대학의 위상이 높아지면 재단의 통제력이 약화하여 지배권을 상실한다고 우려합니다. 일류 대학이 삼류 재단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이니까요.
상당수 사립대학은 설립자 가족이 대를 물리며 재단을 지배하고 대학 운영을 좌지우지합니다. 설립자 친인척이 이사회 의장과 대학 총장을 하는지를 보면 쉽게 이런 대학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교주 패밀리'가 지배하는 대학은 본연의 사명보다 가족의 이권을 지키는 데 주력합니다. 그 도가 지나쳐 사학비리로 유명세를 타기도 합니다.
대기업이 재단을 지배하는 대학도 있지만, 대학 발전에 대한 투자는 매우 소극적입니다. 기업경영 관점에서 대학 투자는 비효율적이며 '돈 먹는 하마'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국내 초일류 대기업이 운영하는 사립대학도 초기에는 세계적 수준의 일류 대학으로 발전할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지금은 용두사미 격이 되었습니다. 대학에 대한 투자는커녕 단물만 빼먹는 기업도 있습니다. 자기네 대학 캠퍼스에서 계열 건설사를 이용해 대규모 공사를 일으키며 학교 자금을 기업으로 옮기는 겁니다.
종교재단은 상대적으로 대학 운영을 도덕적으로 충실히 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종교재단의 주목적은 포교와 교리 전파에 있지 대학의 발전이 아닙니다.
국립대학은 더 심각합니다. 국가가 주인인데 실제로는 교육부가 주인 노릇을 합니다. 여기에 공무원들이 개입하며 도덕적 해이가 난무합니다. 국립대학의 본부 사무국장 자리는 교육부 공무원의 '꽃보직'으로 존재합니다. 이들이 순환근무로 국립대학을 돌아다니며 행정을 맡으니 그 대학의 발전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얼마 전 대통령이 질책하여 국립대학에 파견된 교육부 공무원들이 대거 복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대학의 운영을 책임지는 총장은 재단이나 정부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선임됩니다. 한때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대학의 총장을 직선제로 선출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총장 선거가 과열되며 교수들이 편을 가르고 분열하여 대학가가 정치판이 되었습니다. 이에 간선제나 추천제로 바뀌었는데 대부분은 재단이 결정합니다.
우리나라 대학 총장의 임기는 4년이며, 설립자 가족이 아닌 한 연임은 극히 드뭅니다. 4년 임기의 시한부 총장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대학의 구조조정이나 체제혁신은 엄두도 못 냅니다. 심지어 교수의 성과급 제도도 변경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전근대적 지배구조를 개혁하지 않는 한 한국 대학의 혁신은 요원할 따름입니다. 막대한 국고를 투입해도 그 효과는 한시적일 뿐이며, 정부 지원이 끝나는 순간 다시 예전으로 회귀할 것입니다. 학문·학과 간 벽을 허물고 의사결정 체제를 개방적으로 전환하다 해도 형식적인 변화에 그칠 것입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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