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유출을 막아라'…기업들 속앓이
매달 1.6건꼴로 핵심 기술 유출 사건 발생
중국에 삼성 반도체 짝퉁 공장 지으려던 전직 임원 재판행
"단순 처벌 능사 아냐…퇴직자 위한 생태계 마련돼야" 지적
2023-06-14 16:10:28 2023-06-14 16:10:28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산업기술 해외유출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산업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단순히 처벌 강화 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기술 유출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습니다.  
 
14일 국가정보원과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적발된 산업기술 해외유출 사건은 총 93건으로, 피해 규모는 약 25조원으로 집계됐습니다. 매달 1.6건꼴로 핵심 기술이 유출된 셈입니다. 여기에 적발되지 않은 사건까지 고려하면 실제 피해는 훨씬 막대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중국 시안의 삼성 반도체 공장 바로 옆에 똑같은 복제 공장을 지으려 한 전직 삼성전자 임원이 최근 구속기소된 바도 있습니다.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박진성 부장검사)는 지난 12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최모 전 SK하이닉스 부사장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공장.(사진=연합뉴스)
 
최 전 부사장이 빼돌리려 한 기술은 삼성전자 영업비밀인 반도체 공장 BED(Basic Engineering Data)와 공정 배치도, 공장 설계도면 등이었는데요. 기술 유출로 삼성전자가 최소 300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는게 검찰 측 추산입니다. 
 
최 전 부사장은 2015년 7월 싱가포르에 반도체 제조업체를 설립 한 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핵심 인력 200여명에게 "연봉을 두배 이상 더 주겠다"면서 수준 높은 복지 등을 제안하며 영입했습니다. 최 전 부사장은 직원들에게 삼성전자 반도체 설계 자료 등을 입수해 활용하라고 지시했고, 직원들도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중국에 삼성전자 반도체 복제공장을 지으려던 최 전 부사장의 계획은 대만 업체의 8조원 투자 약속이 무산되면서 불발됐습니다.
 
최 전 부사장이 삼성전자 상무를 거쳐 SK하이닉스 부사장을 지내는 등 국내 반도체 제조 분야의 권위자로 꼽혔단 점에서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 전 부사장이 이직한 후 하이닉스의 수율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업계에서 인정 받던 인물"이라고 회고했습니다. 최 전 부사장은 하이닉스로 이직한 후에도 공공연히 삼성전자를 벤치마킹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고, 하이닉스반도체 경영난 극복에 일조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직장인들 모습.(사진=연합뉴스)
 
재계에선 이러한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건의 원인 중 하나로 솜방망이 처벌을 꼽고 있습니다. 기술 유출이 국가 경쟁력을 훼손하는 중범죄인 만큼 양형기준을 대폭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데요.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반도체, 2차전지 등 주력 산업을 중심으로 기술의 해외유출이 발생해 기업의 생존과 국가경쟁력을 위협하고 있으나 실제 처벌은 낮은 수준"이라며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기술 유출 범죄의 양형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서를 전달한 바 있습니다.
 
이번 기술 유출 혐의를 두고 "산업계 이완용 아니냐"는 격앙된 반응이 나왔지만, 근본적으로 해외로 인재가 유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큽니다. 업계에서도 기술 보안에 다각도로 신경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단순 처벌 만으로는 기술 유출 차단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각 회사에서 산업 기술 관련 보안 시스템을 잘 구축해 놓고 있다"며 "사내에서는 와이파이 작동을 안 되게 해놓는다든지, 출입하는 사람들의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이게 한다든지, 주기적으로 보안 관련 교육을 구성원들에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회사를 다니던 분이 이직을 할 경우 전 직장에서 습득한 지식과 머리 속에 있는 노하우까지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면서 "이런 것을 노리고 중국에서 헤드헌팅하거나 회유하면 달리 손 쓸 수가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또다른 관계자도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다보니 기술 유출 차단 가능성을 원천봉쇄 하기는 어렵다"며 "퇴직자를 위한 다른 생태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반도체 등 핵심기술 민간 퇴직자를 특허심사관으로 채용하는 것을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는데, 이처럼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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