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식시장에서는 소위 K배터리 주식들로 시끄럽습니다. 전직 애널리스트 출신의 IR 담당 임원이 개미투자자들의 지도자로 추앙을 받는가 하면, 특정 주식에 대해 과열을 우려하고, 매도를 권고한 증권사 관계자들은 연일 인신 공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의 배터리 관련 업체들의 2023년 추정 실적이 전년 대비 워낙 좋다 보니 투자자들의 기대감도 높고, 사야되니 팔아야 되니 논란도 많습니다. 그럼, 소위 K배터리는 많은 개미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압도적인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제2의 반도체로 성장하여 한국 경제를 책임질 수 있을까요?
K배터리의 미래 경쟁력을 평가하는 수많은 의견들이 있으며, 대부분 배터리의 기술적 특성에 대한 분석과 미중 갈등 구조가 향후 심화될 거라는 전망에 기초합니다. 재충전이 가능한 2차 전지의 핵심 소재는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인데 한국 배터리는 3가지 광물을 섞은 양극재를 사용하는 소위 삼원계 리튬이온 배터리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생산 규모 측면에서 이미 전세계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배터리 업계들은 인산철 재료의 양극재를 사용하는 LFP 배터리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삼원계와 LFP 배터리의 기술적 차이와 공급망의 차이 이외에도 미국 IRA 법안에 따른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견제와 미국, 유럽의 자국산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 지급 정책 등이 향후 급성장이 예상되는 배터리 시장에 많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술적으로 보면 삼원계와 LFP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좁혀지고 있습니다. 성능은 우수하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고 수명과 안전성에서 약점이 있는 삼원계 배터리는 지속적인 소재 개발을 통해 약점을 보완하거나 장점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LFP 배터리 역시 지속적인 소재 개발과 함께 묶음 단위 기준의 에너지 밀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폼팩터를 출시하고 있어 최근에는 성능이 삼원계 배터리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럼, K배터리는 앞으로도 배터리 성능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기술 혁신에만 주력하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정부, 기업, 투자자들이 제품의 성능과 가격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배터리를 사용하는 고객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생각지 못했던 이슈들이 등장합니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유럽, 동아시아, 북미의 전기 자동차 시장이 선도하고 있는데, 이중 유럽의 전기 자동차 메이커들은 최근 배터리의 탄소배출량에 대한 기준을 부쩍 강화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원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양극재와 음극재는 기초 소재인 리튬, 코발트, 망간, 니켈, 알루미늄, 흑연 등을 복잡한 과정을 통해 가공, 정제, 혼합해서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투입됩니다. 음극재의 핵심 소재인 인조 흑연의 경우 원소재를 3000도 이상으로 가열하여 구워내야 하고, 양극재의 핵심 소재인 리튬은 원광이나 염호에서 고품위의 소재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최종 소재의 100배 이상의 부산물을 발생시킵니다. 즉, 표면적으로는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배터리와 전기차이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제품의 생산과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온실가스, 폐기물,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의 전기차 메이커들을 필두로 온실가스와 환경오염 물질 배출을 대폭 줄인 그린 배터리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린 배터리에 대한 요구 사항을 선도하는 북유럽 스웨덴의 볼보와 독일의 BMW는 이미 배터리 공급사들에게 RE100 선언 및 달성 계획 제출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품의 탄소 발자국을 수년 내 대폭 줄이지 않으면, 보조금을 받지 못하거나 벌금을 낼 수 있다는 경고가 업계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K배터리가 핵심 수출 시장에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력 강화와 원가 절감 못지 않게, 풍부하고 저렴한 재생전기를 확보하고, 오염 물질 배출을 EU 수준으로 낮추어야 하는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소위 그린 배터리에 대한 각국 정부의 요구에는 오염과 탄소 배출 비용을 회피하면서 시장을 석권한 중국 배터리에 대한 견제가 깔려 있습니다. 중국으로 과도하게 집중된 배터리 공급망을 이번 기회에 분산시켜서 미래의 에너지 안보와 자국의 산업 진흥을 꾀하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K 배터리에게는 기회이자 위기이지만, 과연 우리는 얼마나 그린 배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빠르면 10년내 20배 이상 배터리 시장이 팽창 할 수 있는데, 그 속도에 맞게 우리는 재생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을까요? EU 수준으로 엄격하게 공장 오폐수와 대기 오염 물질 환경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K배터리의 미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달려 있습니다.
권효재 COR 페북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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