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대기업과 분쟁하는 중소기업 대표들이 부정경쟁 행위에 대한 처벌과 정부의 대응 강화 등을 18일 촉구했습니다.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 등 다섯 명은 이날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부정경쟁 관련 제도 개선을 국회와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이들은 상생보다 소송이 대기업에 유리한 제도와 문화를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가 18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기업 아이디어 탈취 피해기업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중소기업중앙회)
"협업으로 접근해 아이디어 도용"
롯데와 영양제 공급기 아이디어 분쟁중인 정 대표는 아이디어 도용 입증 책임이 피해 기업에 있는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정 대표는 "스타트업 대표들은 언제 망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항상 있고 대기업이 큰 기회를 준다고 할 때 거절하기란 진짜 어렵다"며 "그러면 (대기업이) 요구하는 정보를 줄 수 있고 구두로도 많이 전달되는데, 뭘 전달했는지 저희가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LG생활건강의 타투 프린터 기술 도용 문제를 다투는 윤태식 프링커코리아 대표는 자사 입장문에 LG생활건강 측이 보낸 협업 문의 이메일과 비밀유지 계약서 등을 공개한 뒤, 3~4월 LG생건 측으로부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고발 당했습니다.
윤 대표는 "실효성 없는 공정거래법에 기대서 고발했을 때 과연 얻는 것이 무엇일지 정말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어 "만일 이런 걸 했다가 적용 안 되면 오히려 역프레임을 쓰게 된다"며 "왜 스타트업이라는 약자의 프레임으로 잘 나가는 회사를 공격하느냐고 할 수 있고 실제 이런 경우도 많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밖에 목장 기록관리 앱 '키우소'와 'NH하나로목장'의 유사성을 주장하는 방성보 키우소 대표, 혈당 관리 플랫폼 닥터다이어리와 카카오헬스케어 사업 계획 유사성을 주장한 송제윤 닥터다이어리 대표, 신한카드 My송금 서비스의 특허 침해를 주장하는 홍성남 팍스모네 대표도 현실적인 징벌을 촉구했습니다.
알고케어와 프링커코리아, 닥터다이어리 주장의 공통점은 투자와 협업 논의 등을 이유로 상대 대기업과 사업 정보 전달 등 교류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키우소의 경우 2020년 농협중앙회 주최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팍스모네는 신한카드 상대로 두 개 사건이 진행중입니다. 앞서 2007년 신용카드 회원 간 신용카드 결제 서비스 특허를 등록했지만 2020년 신한카드가 특허등록 무효심판을 제기했습니다. 특허법원이 2022년 특허심판원의 특허등록취소 심결 취소를 선고했지만, 신한카드는 올해 1월 상고했습니다. 팍스모네는 2021년 신한카드 상대로 낸 특허침해와 기술탈취 중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 심리 진행 요청 서면을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에 냈습니다.
윤태식 프링커코리아 대표가 현행법에 기대기 어려운 아이디어 도용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중소기업중앙회)
"자동차 동의 없이 타도 징역형…아이디어도 유형물처럼 중요"
이날 기자회견을 준비한 재단법인 경청과 중소기업들은 부정경쟁방지법상 아이디어와 성과물 침해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 신설, 행정조사 범위 확대와 실효성 강화, 행정조사와 수사기관 등의 범부처 협의체 구성, 아이디어 등에 대한 객관적 가치 평가기관 마련 등이 시급하다고 했습니다.
재단법인 경청의 박희경 변호사는 부정경쟁방지법상 아이디어와 성과물 침해, 데이터 부정사용과 성과물 침해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이 없는 점을 문제삼았습니다.
박 변호사는 "자동차 소유자 동의 없이 자동차를 일시 사용한 경우에도 3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하는 규정이 있다"며 "유형물의 부정 사용에 대해서는 이미 형법상 징역과 벌금 규정이 있는데 아이디어가 유형물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성과물 침해 피해 구제 수단이 민사 소송뿐이라 증거 수집이 어려워, 특허청 행정신고 등 절차를 활용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도 했습니다.
현재 아이디어 침해와 데이터 부정 사용에 대해, 가해 기업의 위법성이 인정돼도 가능한 행정 조치는 시정 권고가 유일합니다. 이에 성과물 침해도 행정조사 대상이 되도록 현행법을 바꾸고, 아이디어 침해와 데이터 부정사용 등에 위법성이 인정되면 시정명령까지 가능한 구조를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박 변호사는 "피해 기업의 구제 수단은 민사 소송이 유일하게 되고 행정 조사 과정에서 행정청이 위법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내릴 수 있는 건 시정 권고에 불과하다"며 "위법성을 제거하라는 명령은 못하고 '위법성을 한번 제거하는 게 어떠냐'는 권고 형태만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피해 기업이 실질적인 피해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밖에 아이디어와 기술침해 등 분쟁 시 관련 부처 간 협력, 중소기업 기술침해 공동대응을 위한 상설 범부처 협의체 설치, 중소기업 아이디어·성과물·데이터 등에 대한 객관적 가치 평가와 잠재적 성장 가치에 대한 사용료 산정 기준 마련 등도 촉구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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