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던 일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KT 대표직을 둘러싼 여진이 무려 4개월여가 넘도록 계속되는 중인데요. 급기야 28일 구현모 현 대표는 차기 대표 후보직에 이어 직무대행 대표직에서도 사의를 표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경영 조기 안정화를 이유로 꼽았지만, 글쎄요. 그저 외압에 시달린 끝에 남은 무기력감만이 느껴집니다. 차기 대표 선임이 속절없이 늦어지는 와중에 그나마 현 대표가 직무대행을 맡아 경영공백을 메울까 했던 기대도 이젠 물거품이 됐습니다.
지루한 과정이지만 한 번 더 복기해볼까요. 최근의 KT 잔혹사는 지난해 11월초 구현모 대표가 연임의사를 표명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구현모 대표는 이사회로부터 연임 적격 평가를 받았음에도 복수후보 심사를 자진해서 요청했었죠. 준수한 경영 성적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KT 수장을 향한 정권과 여권의 뜨거운 관심과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물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사법 리스크도 부담이 됐을 테고요.
구 대표는 어쨌든 정면돌파를 택했고, 이사회는 사내외 27명의 후보를 심사한 후 12월 말 구 대표를 최종 후보로 확정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KT 수장이라는 '자리'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식지 않았습니다. 이사회는 2월 초 공개경쟁 방식으로 대표이사 선임을 재추진했고, 여기에 수십명의 후보자가 공모에 응했죠. 구 대표 역시 다시 경쟁에 응하는 듯했으나 결국 2월 말 차기 대표 후보자 자리에서 자진사퇴했습니다.
만약 이쯤에서 사태가 일단락됐다면 모양새가 좀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구 대표가 후보에서 사퇴한 다음 며칠 후 대표 후보자 숏리스트가 4인으로 압축됐는데, 그 직후인 3월초 여권 의원들은 이들을 두고 공개적으로 '그들만의 리그'라는 꼬리표를 붙였습니다. 박윤영 전 KT 기업부문장, 신수정 현 KT 엔터프라이즈부문장, 윤경림 현 KT그룹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 임헌문 전 KT 매스총괄 등 KT맨 4인 모두에게 딴지를 건 셈인데요. 기왕이면 숏리스트를 추리기 전 지원자 전체의 면면에 대한 여권의 평가도 한 번 들어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후 최종 대표 후보 1인이 된 윤경림 후보자마저도 채 20일도 버티지 못하고 이달 말 결국 사의를 표명했지요. 4개월 동안 두 명의 1인 후보자가 두손 두발 들고 떠나게 된 것인데요. 여기에다 이날은 구 대표 외에 일부 사외이사들도 KT를 떠나겠다 표명한 상황입니다. 선수, 심판 할 것 없이 하나둘 떠나가는 KT 대표이사 선임과정을 지켜보는 내부 직원들의 마음은 그야말로 참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기업에서 민영화한 민간기업이란 말은 아무래도 KT엔 그저 수식어에 불과했나 봅니다. 현재 소유분산기업이란 명목 아래 회사가 외압 속 통째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모습인데요. 소유분산기업은 알려져 있다시피 대주주가 없는 기업을 뜻합니다. 일명 주인 없는 회사라고도 불리죠. 그런데 지금의 KT 모습을 보면 여전히 숨은 큰 주인이 따로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누군가를 내려 꽂던 옛날 주인들과는 조금 차별화된 모습이긴 하네요. 마음에 드는 답이 나올 때까지 '노(No)'만 내놓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라도 이러나 저러나 답이 정해져 있는데 모호하게 이러는 거라면 아무래도 기업 입장에선 더 까탈스럽게 느껴질 듯합니다. 3년마다 돌아오는 KT의 잔혹사, 도대체 언제쯤 끝이 날 수 있을까요.
김나볏 중기IT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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