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없는,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공익에 기여했던 기업들인 만큼 정부의 경영 관여가 적절하지 않으나,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를 만들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한다."
소유분산기업 문제와 관련해 지난 1월 말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했다는 말입니다. 대통령의 말에 화답하듯 2월 초에 국민의힘에서는 "소유분산기업들의 대표이사들이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며 토착화하는 호족 기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워딩이 뒤이어 나왔습니다. 타당한 말입니다. 고정된 주인이 없다고 해서 특정 세력이 기업을 오랜 기간 손쉽게 장악해 기업의 성장성을 저해하는 판단을 하거나 전횡을 저지르는 일이 생겨선 안되니까요. 얼핏 들으면 현 정부가 부르짖는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는 기조로 읽힙니다.
윤 대통령의 워딩을 좀 더 뜯어서 볼까요. '정부의 경영 관여', 그리고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야'라는 문구가 눈에 띕니다. 그렇습니다. 윤 대통령도 분명히 알고 있는 듯합니다. 아무리 소유분산기업이다 하더라도 정부의 경영 관여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요. 그렇다면 관여는 정말 최소한으로 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 관여해야 할까요?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가 무너졌을 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라도 관여하는 방식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대통령도 분명히 말했지요. 그러기 위해선 그에 합당한 절차와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사회 각계의 머리를 맞댄 고민을 토대로 한, 제도 수립을 통한 최소한의 개입 정도가 아마도 적절할 것입니다. 그럴 때 소유분산기업은 좀더 공정하고 투명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고개가 조금 갸우뚱해집니다. 말은 맞는 말이긴 한데 정해둔 타깃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어떤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사는 상황인데요. 그 타깃으로 거론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KT입니다. 현재 KT는 최고경영자(CEO) 교체 시기를 맞았고, 현직인 구현모 대표가 연임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이죠. 첫번째 연임 도전인 데다 기업 정관상에도 엄연히 연임이 허용된 만큼 일단 '자신만의 왕국', '토착화'란 꼬리표는 이 경우에 딱 들어 맞지 않아 보입니다. 구 대표는 연임 후보가 되기 위한 절차도 제대로 밟았습니다. KT 이사회로부터 적격 심사를 받고도 자진해서 복수의 후보를 심사해 달라고 요청해 최종적으로 차기 CEO 후보로 뽑혔습니다.
물론 이슈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KT 전직임원들의 이른바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혐의는 구현모 대표가 넘어야 할 리스크입니다. 다만 구 대표는 불법영득의사가 없었다며 현재 무죄를 주장하고 있고, 재판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현재 상황에서는 오히려 경영성과가 어떠했는지에 더 무게를 두고 살피는 게 타당해보이는 이유입니다. CEO는 결국 숫자로 말해야 하니까요. 아시다시피 KT는 지난 3년간 디지털플랫폼기업(디지코) 전환으로 실적이 대폭 개선되면서 시가총액 10조원을 넘는 성과를 낸 바 있습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는 당연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걸 정부와 국회가 갑자기 작정한 듯 나서니 의구심이 드는 것이죠. 많은 분들이 아마 자연스레 KT의 과거사를 떠올리고 계실 겁니다. KT는 민영화 이후 5번의 CEO가 부임했는데, 민영화 했음에도 CEO 교체시마다 정권과 가까운 인물이 자리에 오른 바 있죠. 이번에는 이같은 관치 논란에서 과연 자유로운 것일까요? 소유분산기업과 CEO 교체 이슈, 아무래도 각 계가 계속해서 주의깊게 눈여겨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나볏 중기IT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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