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산으로 간 배' 끌어내리는 건 결국 사람
2023-01-25 06:00:00 2023-01-25 06:00:00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중소기업 R&D(연구개발) 제도 혁신을 주창하고 나섰습니다. 반가운 일인데요. 이영 중기부 장관은 R&D 제도 개선방안을 밝히는 자리에서, 그간의 중소기업 R&D 제도를 '산으로 가 있는 배'에 비유했습니다. 일단 이 배를 끌어내리는 것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제도 혁신을 이뤄나간다는 방침인데요. 
 
발표된 자료를 살펴보면 반가운 내용들이 다수 눈에 띕니다. 우선 R&D 지원 기업의 재무적 결격 요건을 철폐하고, 사업계획서도 대폭 축소해 제출하도록 한다는데요. 이렇게 되면 역량은 있으나 당장의 재무에 발목잡혀 있는 많은 기업들이 연구개발에 나설 수 있게 되겠죠. 내야 할 서류의 양도 줄어드니 안 그래도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 입장에선 숨통이 다소나마 트일 수 있겠습니다. 이밖에 사업계획 변경시에 사전승인에서 사후통보하면 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점 또한 중소기업의 자율성을 높이고 인력 부담을 더는 방향이니 환영할 만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산에 있는 배를 끌어내리는 차원이라 그런지,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정책까진 나아가지 못한 듯해 아쉽습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고, 남겨진 숙제가 많다는 느낌인데요. 업계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사실 따로 있죠. 바로 지원사업 심사에서 평가자의 역량 문제인데요. 아무리 지원절차를 간소화한들 지원사업에 최종적으로 선정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지원사업의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도 평가자의 역량은 매우 중요하죠. 
 
지원 기업들이 평가자에 대한 의구심을 품어온 이유는 뭘까요. 평가자가 해당 기업의 지원 요청 내용을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나, 평가자가 지원 내용과는 관계 없는 분야의 전공자라는 생각이 들 때 그렇습니다. 사실 이 부분을 말끔히 해결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원래 지원사업 평가라는 게 소수 몇명이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일차적으로 시간과 자원의 문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히나 R&D의 경우 다양한 업종과 분야에 걸쳐 있기 마련인데, 우리 기업의 경우에 딱 맞는 평가위원을 만나기란 당연히 쉽지 않겠죠.
 
중기부도 이 문제를 염두에 두고는 있습니다. 과제와 평가위원 간 연관성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이번 발표에서도 살짝 언급은 됐는데요. 향후 중기부는 과제의 내용과 관련한 키워드를 뽑아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이터베이스(DB) 작업도 중·장기적으로 진행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해결이 될까요? 다양한 R&D 과제의 내용과 평가자를 일일이 매칭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각 지원사업마다 평가자를 달리하게 되면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바로 공정한 비교 문제인데요. 한가지 지원사업을 두고 소수의 사람이 지원기업들을 평가하는 것은 비단 경제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닙니다. 소수가 여러 과제를 평가해야 지원서 별로 차등적인 점수를 줄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합니다. 어쨌든 어느 곳이 더 우수한 지원기업인지 뽑아내야 하는 문제니까요. 
 
결국 상대적으로 넓은 분야에 대해 두루 역량이 갖춰진 평가위원을 섭외하는 것이 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식견이 넓고 높은 인재를 평가자로 앉혀야 하는 것인데요. 여기서 식견이란 비단 학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하고 새로운 R&D 시도를 읽어낼 만한, 젊고 유연한 시각을 갖춘 평가자를 섭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결국 DB 매칭만으로 해결하기보다는 해당 지원사업의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안목을 길러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루 박식하면서도, 학문의 숲에만 너무 매몰돼 있지 않은 평가자들을 고르는 눈 말입니다. 평가자들에 대한 인센티브 안도 고민한다던데, 이 역시 중요하긴 하지만 추후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결국 자기가 맡은 사업에 대해 진심인 공무원이 매의 눈으로 평가자 인력풀을 넓혀 나갈 때 문제가 생각보다 쉽게 풀려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니다. 여기저기서 디지털화를 부르짖지만, 결국 정성적인 부분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고 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김나볏 중기IT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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