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포스트팬데믹 시대, 공연장의 낯선 풍경들
2022-11-21 06:00:00 2022-11-21 06:00:00
지난 12일, 서울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땅이 젖은 날엔, 특히 주말이라면 밖에 잘 나가지 않지만 우산을 들고 홍대앞으로 출발했다. 검정치마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최근 발매된 다섯번째 정규 앨범은 1990년대 펑크를 기반으로 누구도 따라가기 힘든 멜로디 감각과 시니컬한 가사, 센스 있는 편곡이 담겼다누군가는 “역시 검정치마'라고, 또 누군가는 “아직도 검정치마네"라는 같은 의미의 다른 반응이 이어졌다. 대형 공연장에서 열린 발매 공연은 당연히 매진이었고, 이어서 열리고 있는 클럽 공연도 오픈과 동시에 계속 만석이다. 이 날도 그랬다. 홍대 왓챠홀이 600명의 관객으로 꽉찼다. 얼추 살펴본 관객들의 비율도 이색적이었다. 20대와 30대가 주를 이룬 건 당연하지만, 남녀비율이 대략 4:6에 가까워 보였다. 메탈 정도를 제외하면 이 정도의 남녀비율을 가진 공연은 적어도 남자 뮤지션들 중엔 없다. 8시가 좀 넘어서 공연이 시작됐다. 첫 곡 부터 떼창이 터졌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눌려왔던 답답함을 푸는 것 이상의 열기가 수증기처럼 퍼졌다. 문제는 공연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평균보다 키가 작은 나는, 오랜 공연 경험을 거쳐 나름의 생존 노하우를 익혀왔다.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쏘다니며 시야를 확보하는 감각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에게 공연이란 보는 행위에서 듣는 행위로 격하된다. 하지만 이 때는 그럴 수가 없을 만큼 객석의 밀도가 높았다. 여유 공간이 없는 탓에 시야가 확보될 만한 곳도 없었고, 이를 위해 움직일 공간도 없었다. 
 
나이를 먹으며 좋은 건, 포기가 빨라진다는 거다. 답이 없으면 미련도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왓챠홀을 빠져나와 근처의 상상마당으로 향했다. 어느 1세대 인디 밴드의 앨범 발매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들 역시 오랜만에 새 앨범을 냈다. 데뷔한지 20년이 넘은 이 팀 역시 언제나 양질의 음악을 들려줬다. 세기말 청년들의 어둠에서 시간과 함께 문학적찰을 담아내곤 했다. 이번 앨범 역시 호평을 받았다. 과거의 방법론을 고수하는 많은 뮤지션들과는 달리, 동시대의 팝 사운드에서 영향을 받아 또 한 차례의 진화를 했다. 이 밴드의 이름을 굳이 밝히지 않는 이유는, 공연장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받았던 씁슬함 때문이다. 스탠딩으로 진행할 경우 상상마당은 약 300명 정도의 관객이 찬다. 나는 이 밴드의 공연을 데뷔 때 부터 봐왔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늘 스탠딩이었다. 특히나 앨범 발매 공연같은 중요 이벤트는 늘 그랬다. 그러나 이 날은 의자가 깔려 있었다. 자리에 앉은 관객의 연령대는 젊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40대가 평균이고 그 이상의 관객도 적지 않았다. 중장년이 공연을 보는 게 의아한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코로나 19 이전에 이 밴드의 공연 역시 20대와 30대의 비율이 제법 있는 편이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그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 낯선 풍경은 어디서 기인한 걸까. 공연의 내용은 늘 그렇듯 훌륭했지만 그 훌륭함을 즐기기에 머리 속에 떠오른 질문의 무게가 제법 됐다. 하나의 시대가 끝나가는 착각마저 들었다. 
 
2016년 여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느꼈던 감정이기도 했다. 그 해 첫 날 헤드라이너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였다. 2002년 이후 14년만에 찾아온 그들의 무대 앞에는 1990년대의 로큰롤 키드들로 가득했다. 낡아버린 밴드 티셔츠가 신상이었을 때는 날렵했을 몸은 1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티셔츠만큼이나 낡았다. 음악에 대한 열정보다는 삶의 책임이 일상을 차지할 나이가 된 그들에게,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그 때 그 시절을 소환했다. 거대한 때창과 점프가 90분 동안 이어졌다. 
 
토요일의 헤드라이너는 EDM프로듀서인 제드였다. 거대한 콘솔앞에서 실제 연주는 커녕 라이브 믹싱도 하지 않는 그의 공연을 관객들은 환호로 화답했다. 심지어 음원으로 트는 보컬을 따라 부르는 낯선 모습도 보였다.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20대 관객들은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가 EDM이고 심지어 라이브 사운드도 아니라는 사실은 전혀 개의치 않는 것 처럼 보였다. 전날, 같은 무대 앞에서 환호했던 어제의 록 키드들은 이 모습을 보며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그 옛날 그토록 혐호하던 꼰대의 표정으로 “이걸 음악이라고..”하머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록의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문 같은 순간이었다. 
 
20대를 함께 했던 1세대 밴드, 30대를 함께 했던 2세대 밴드가 같은 날 공연을 했던 주말, 내가 느꼈던 무게는 무엇이었을까. 록의 종언 같은 거창한 화두는 아닐 것이다. 30대와는 달랐던 20대가 명백한 과거로 진입하는 모습을 비추는 거울의 시간을 스스로 인정해야한다는, 가을비처럼 차가운 사실의 무게였을 것이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noisepop@hanmail.net)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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