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부위원회 폐지만이 능사가 아니다
2022-11-17 06:00:00 2022-11-17 06:00:00
문학 진흥과 잡지 진흥을 담당하는 정부위원회가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 행정안전부가 중앙정부 위원회 636개 가운데 39%에 해당하는 246개를 폐지?통합하기로 결정했는데, 여기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정부 판단처럼 법령에 따른 법정 위원회들이 폐지될 경우 해당 분야의 유일한 정책 거버넌스(민관협치)가 사라지는 것과 다르지 않아 우려된다.
 
행정안전부는 정부위원회 중 불필요한 위원회를 폐지한다고 지난 9월 7일 발표했다. 각종 정부위원회 일괄 정비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로, 행정안전부는 최소 30% 이상의 정부위원회를 정비한다는 정량적 목표까지 미리 정해 ‘정부위원회 정비 추진계획’을 7월 5일 국무회의에 상정했고 부처별 선별 작업을 거쳤다. 정비안에서는 운영실적 저조, 유사?중복 위원회, 단순 자문 성격 위원회를 통폐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민관합동 진단반을 편성해 부처별 정비안을 검토하고 최종 대상을 선정했다. 
 
위원회 정비실적이 41%로 평균 대비 높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경우 문학진흥 정책위원회, 정기간행물(잡지) 자문위원회, 도서관 자료 심의위원회, 만화진흥위원회, 공공디자인위원회, 공예문화산업진흥위원회, 국가대표선수 보상심사위원회 등 총 13개 위원회가 폐지 대상에 포함되었다. 
 
그렇지만 얼마나 심도 있게 위원회 폐지가 검토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관련 단체나 해당 위원회의 의견을 묻지 않고 부처 판단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다. 통폐합 할당량을 사전에 정해 놓고 부처별로 밀어붙이기를 하면 힘없는 위원회만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학진흥 정책위원회와 정기간행물 자문위원회 사례를 보자. ‘문학진흥법’은 문학진흥에 관한 주요 사항을 자문하기 위해 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하고, 문학진흥 기본계획의 수립?시행을 위해 문학진흥 정책위원회의 자문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잡지진흥법(잡지 등 정기간행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역시 정기간행물의 발전과 진흥을 위해 자문위원회를 둔다고 규정했다. 이 법은 5년 단위의 정기간행물 육성 기본시책을 수립?시행하도록 하고, 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치도록 했다. 
 
문학이나 잡지 분야의 경우 정부 담당 부서 이외에는 총괄적인 정책 논의 기구가 없다. 따라서 단지 5개년 계획에 대한 자문만이 아니라 해당 분야 정책 과제들을 정기적으로 검토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하는 정책 창구로서의 의미가 크다. 두 위원회 모두 ‘단순 자문’ 성격이어서 폐지 대상이 되었다고 하는데, 문학진흥법과 잡지진흥법을 제정할 때 ‘단순 자문’을 하라고 위원회 규정을 둔 것은 아닐 것이다. 두 위원회의 실제 운영 과정에서도 다양한 정책 제안이 이루어졌다. 연간 몇 차례의 정기적인 회의를 하는 위원회조차 없애버린다고 누군가 대신해서 문학이나 잡지진흥을 위한 정책 제안을 하는 것도 아니다.   
 
행정안전부는 이번 위원회 정비에 그치지 않고 ‘행정기관위원회법’을 개정해 신설 위원회의 경우 5년 이내의 존속 기한을 두도록 하고, 중앙정부에 이어 지자체의 위원회도 대폭 줄일 계획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일부 예산과 행정력 절감은 이룰 수 있을지 몰라도 분야별 정책 거버넌스를 매개로 한 정책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정부위원회 정비가 관행적인 위원회 운영으로 발생한 낭비와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어떤 낭비와 비효율 요소가 있었는지, 살아남은 위원회에는 그런 요소들이 없다는 것인지 제시하지 않았다.  
 
법정 위원회가 폐지되려면 해당 위원회가 포함된 법률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의 의견 청취가 필요하다. 정책 거버넌스의 싹을 키워가야 할 마당에 뿌리뽑기를 단행함으로써 ‘잡초를 제거했다’고 여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8년에도 정부 위원회 273개를 줄였다. 상징적으로 ‘우주사고 조사위원회’가 정리 대상이 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소관의 ‘출판유통심의위원회’와 독서문화진흥법 소관의 ‘독서진흥위원회’처럼 꼭 필요한 위원회조차 폐지 대상이 된 것은 지금까지도 정책 패착으로 회자된다. 없애기는 쉬워도 만들기는 어려운 법이다. 무분별한 정책 거버넌스 폐지는 재고해야 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출판평론가(bookclub21@korea.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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