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제는 ‘지일(知日)’을 얘기하자
2022-11-08 06:00:00 2022-11-08 10:42:00
먼저, 여전히 친일·반일과 같은 부정적 의미의 프레임만으로 한일관계를 유도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과연 그 진정성이 무엇이고, 또한, 그 집단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꼼꼼히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제언으로 이 글을 시작할까 한다. 다음의 문장들을 읽어보자. 
   
“식민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한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의심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
 
앞의 것은 1998년 10월에 있었던 이른바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불리는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주요 내용의 하나이고, 뒤의 것은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태평양전쟁 당시 식민 지배에 공식으로 사죄하는 뜻을 표명한 ‘무라야먀 담화’의 핵심 문장의 하나다. 
 
이 두 개의 문장에서 공통적으로 읽히는 것은 과거 일제가 행한 지배와 침략에 대한 진정한 사죄다. 차이점은 앞의 것은 사과의 대상이 ‘한국’이라고 명시한 것이고, 뒤의 것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여러 나라’라는 것.
 
특히,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일본 총리에게 ‘화해’라는 용어로 화답했다. 이것은 주목해야 한다. 한국 대통령이 ‘화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두 가지 사례를 든 것은 작금의 한일 관계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 지에 대한 좋은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 내재돼 있다. 
 
그럼, 한일 양국은 앞으로 어떻게 선린관계를 이어가야 할까. 그 방향등을 2022년 여름에 있었던 ‘한일 국민 인식조사’가 밝히고 있는 듯하여 인용해본다. ‘동아시아연구원’(한국)과 ‘겐론 NPO’(일본)가 공동 조사한 것이다.  
 
여러 설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항목은 ‘한일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가’다. 이에 대해 한국인 81.1%, 일본인 53.4%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이 수치는 2021년에 행했던 조사 결과인 71.1%와 46.7%에 비하면 그 호감도가 개선된 것.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악화했던 양국의 국민 정서가 회복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것은 곧,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표명하는 한일 관계 개선 의지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하나, 한국인 65.9%, 일본인 66.3%가 대답한 관계 개선을 위한 선결 과제로 ‘역사 문제’를 꼽은 것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독도 문제도 유사한 응답(한국인 61.3%, 일본인 45.5%)이 나왔다. 
 
이 밖에 여러 항목에 걸친 한일 국민 인식 조사는 두 나라 국민이 새겨야 할 유의미한 결과로 다가온다. 필자는 이 공동조사 및 그와 관련된 기사를 접하면서, 양국 정부가 관계 개선을 위해 배전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필요하지만, 민간 차원에서 보다 더 적극적인 교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상대국에 ‘좋은 인상’을 가진 이유로 한국인은 일본인에 대해 ‘친절하고 성실한 국민성’(63.8%), ‘생활수준이 높은 선진국’(37.8%)이라는 대답이 우세했고, 일본인은 한국인에 대해 ‘한국 대중문화’(44.7%)와 ‘한국 식문화와 쇼핑’(43.4%)이 높은 응답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이런 통계를 바탕으로 생각하면, 양 국민에게 반일, 친일, 혐한과 같은 부정적 의미의 프레임을 통해 극단의 감정으로 치닫게 해서는 안 된다. 불행한 미래를 낳을 뿐이다. 지금과 같은 냉전의 시대에는 한일관계는 더더욱 아름다운 이웃으로 가야 한다. 일본을 알아야 하고 한국을 알아야 한다는 지일·지한의 물결이 필요한 때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 보도됐던 최태원 SK회장의 “한·미·일 집단 지성 플랫폼 만든다”는 소식은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오래전부터 민간차원에서 한일 양국의 학자들이 ‘역사 공통 교재를 만들자’는 움직임도 다시 불이 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정부가 나서는 것보다 민간에서의 적극적인 교류가 이루어진다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유의미한 결과를 산출해낼 수 있다. 그것은 곧 향후 한일 양 정부를 움직이게 하는 요인으로 작동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오석륜 시인·번역가/ 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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