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검객이 싸운다. 막상막하의 실력이다. 그런데 한쪽은 칼자루를 쥐었고, 다른 쪽은 칼날을 쥐고 있다면? 3·9 대선을 기점으로 권력을 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그리고 권력을 잃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간에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숨 가쁜 충돌 상황을 보면, 젊은 시절 읽었던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가 생각난다. '전설의 검객', '천하제일의 검객'으로 불리는 일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1584-1645)는 요즘 한국 정치에, 특히 민주당에 예리한 교훈을 준다.
최근 여야 전면전은 과거 '민주 대 반민주' 대결이나 정국 헤게모니 쟁탈전과는 차원이 다른 '극한 감정싸움'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대선이 끝난지 9개월째 접어들고 있지만, 민주당은 0.73%의 악몽에 사로잡혀 '분노의 정치'를 해오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 김건희 논문 의혹, '바이든 날리면', 시정연설 보이콧…. 앞으로 정치권도 국민들도 분노의 불길은 더욱 활활 타오를 것이다. 미야모토가 66번의 진검 대결에서 모두 승리하면서 가장 강조했던 것은 '냉철함'이었다. "바위 같은 마음을 가져라. 동요하지 않는 마음의 소유자가 승리한다!" 그는 평정심을 기르기 위해 수묵화와 공예를 배웠다. 대선에서 간발의 차로 석패한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를 갈며 윤석열정부의 무능과 실정을 비판하는 게 야당의 책무라고 주장하겠지만, 정치도 결투라고 한다면, 화풀이가 아니라 승리해야 하지 않는가? 평정심을 잃으면 김의겸 의원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 제기'와 같은 제2의, 제3의 헛발질 아니 '헛칼질'이 나오게 된다. 지금 민주당은 유동규·남욱 발(發) 대장동 사정 한파에 냉철하게 대처하고 있는가? 분노의 화염에 휩싸여 있는가?
민주당은 이 대표의 대장동 건과 성남FC 의혹, 아들 건 외에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서해 공무원·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월성원전 문제 등에 대한 전방위 사정 칼날에 직면해 있다. 검객 미야모토는 결투 때마다 '강온 양면 전략'을 유효적절하게 구사했다. "공격의 리듬을 타라! 완급 강약 조절로 결정적 타격을 가하라!" 공격과 방어를 적절하게 병행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대선 직전 '검수완박'부터 대통령의 시정연설 보이콧, 윤석열 특검 공세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강경 일변도로 몰아붙였다. 민주당은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구속되자 "협치는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여야는 언제 협치 전략이나 온건 전략을 시도한 적이 있었던가? 조응천, 전재수 의원 등 당내 직언파들은 문자 폭탄 세례를 받지 않았던가? 여전히 민주당 지도부에 포진하고 있는 586 운동권 출신 중진들과 초선 강경파 그룹인 '처럼회' 그리고 열성 지지층인 '개딸'들의 강공 드라이브는 지지층 결집이라는 득(得)보다 중도층 이탈이라는 실(失)이 더 많지 않을까? 온건 전략 중에는 '자기성찰'도 포함된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의 과오에 대해 추상(秋霜) 같이 질타하되, 자신들의 명백한 과오에 대해서는 솔직히 시인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문재인정부 5년 동안의 사정은 모두 공정한 법 집행이었고, 윤석열정부의 사정은 모두 불공정한 정치보복이라는 논리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최근 3개월 넘도록 윤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겨우 30% 안팎을 맴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지지율이 오르기는커녕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하락했다는 사실은 싸늘한 민심의 증거라고 본다.
미야모토가 평생 중시했던 것은 '심리전'이었다. 일부러 결투장에 늦게 나타나거나 묘한 표정으로 상대방의 약을 올리기도 했던 그는 말했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라! 견(見)하지 말고 관(觀)하라! 사물의 표피가 아니라 본질을 꿰뚫어보아라! 상대의 몸놀림에 현혹되지 말고 의도를 읽어라!" 요즘으로 치면, 민주당은 윤석열정부와 국민의힘을 싸워서 무너뜨리려고 하지 말고, 국민들의 속마음을 간파해 부응하라는 말로 들린다. 우리 국민 특히 중도층은 정치혐오 속에 오로지 민생경제가 나아지기만을 갈망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차치하고, 민주당은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으로서 민생경제 살리기에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해왔는가? 결국 민심을 얻는 쪽이 사정정국의 최종 승자가 될 것이다.
민주당과 이 대표가 '조선제일의 검객'이라는 별명을 갖고 사정정국의 사령탑으로 지목받는 한동훈 법무무 장관을 제압하고 사정정국을 돌파하여 국민적 지지를 받고자 한다면, 미야모토의 3법칙-냉철함, 강온 양면, 심리전-을 유념하기 바란다. 이는 아득한 17세기 사무라이 리더십을 넘어 21세기 대한민국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에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본다. 아울러 미야모토가 죽기 직전에 후세에 남긴 말을 되새겨 보기 바란다. "나는 세상의 도(道)에 거슬리지 않았고, 자만하지 않았고, 욕심부리지 않았으며, 재물을 모으지 않았다…몸은 버리되 명예는 버리지 않았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 검객의 말이 여야 정치권 모두에게 강한 울림을 준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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