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올가을에는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자
2022-10-11 06:00:00 2022-10-11 06:00:00
늦더위가 어지럽히고 간 기억을 지우고 싶었을까. 둔덕진 곳에 모여 있던 코스모스가 일제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더위는 시월 초까지도 계절을 망각한 채 가을의 영역을 수시로 침범하였다. 우리를 괴롭혔다. 그래서 빗줄기에 씻겨간 늦더위의 안부는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이제야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가을이 온 듯하다. 그 바람에게 물어본다. 한로(寒露)가 다가오니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그리워지는데, 어찌하면 좋을까, 하고.    
 
 아,/ 나는 그대가 꽃인 줄 알고/ 바람으로 다가서기만 했는데// 아, 그대는/ 내가 꽃인 줄 알고/ 바람으로 서서 맴돌기만 하였구나
                               -오석륜, 「그리움은 바람의 성질을 갖고 있다」 전문 
 
몇 년 전에 출간한 시집(『파문의 그늘』, 시인동네, 2018) 속의 한 편 「그리움은 바람의 성질을 갖고 있다」를 몇 번 읊조리다 보니, 가을 향기를 지녔던 사람이 보고 싶어진다. 시의 화자는 “그대가 꽃인 줄 알고/ 바람으로 다가서기만 했는데”, 그대는 화자가 “꽃인 줄 알고/ 바람으로 서서 맴돌기만 하였”으니,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나고 싶었는데 만나지 못했으니, 그리움을 낳았다. 시에서 서로에게 그리움을 키우게 한 것은 바람이었기에, ‘그리움은 바람의 성질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나는 또 한 편의 시 「그리움의 성질」(『대건의 문학』, 대건문학회, 2021)에서는 그리움을 다음과 같이 풀어내며 스스로 위로했다. 산문시로 된 시의 일부를 인용해 읽어본다.          
 
그리움을 푼다는 것, 그것은 추억의 장소를 찾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야 풀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구 떠난 지 사십 년 가까이. 그리움이 풀릴까 해서 어릴 적 살던 집을 찾아갔지요. (중략) 같이 살았던 이웃은 없었지만, 다행히 그들의 행방은 아직도 퇴거신고를 하지 않고 있었어요. 집 안 여기저기에서 쌓였던 추억이 들춰질 때마다, 누군가를 부르며 문밖에서 서성이다 떠나가는 소문.// 만나지 못하면 그리움은 풀리지 않고 더 쌓이는 법. 어쩌면 그리움은 인간의 욕심과 같은 성질의 것인지도 모르지요. (중략) 같은 동네에 살았던 그 소녀의 소식도 궁금했지만, 안경 쓴 그 애의 안부가 꿈틀꿈틀 살아났지만, 아직까지 그 집에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아예 접어두고 길을 떠났지요. 채 감지 못한 연처럼 허공에 남아, 두류산에서 불어오는 마파람에 펄럭이는 그리움. 손을 흔드는 그리움. 
                                                         -오석륜, 「그리움의 성질」 일부 
 
화자에게 그리움은 단지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야 풀린다는 깨달음과 맞닿아 있다. 이 시의 제목 ‘그리움의 성질’은 바로 그런 함의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때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그리움과 인간의 본성은 의기투합하리라. 화자에게 “채 감지 못한 연처럼 허공에 남아” 있는 그리움은 아쉬움으로 남아 오랫동안 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리움의 사전적 의미는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다. 누가 그리움이라는 단어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을은 사람도 곡식도 성숙해지는 계절. 성숙해지니까 사람은 살아온 동안을 되돌아보며 그리움을 품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리움에, ‘깊이 스며들거나 멀리까지 미치다’는 뜻의 ‘사무치다’라는 말이 더해지면, 더 애틋해진다. “물을 떠난 고기가 물을 그리워”하겠지만, 사람은 누군가를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에 사로잡힌다. 그것이 그리움의 성질이다. 
 
계절은 바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그리운 사람을 품거나,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꿈을 꾸라고 한다. 세 해 가까이 코로나를 겪으며 지칠 대로 지친 마음과 몸을 치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가을에는 반드시 우리에게 그것을 허용해 주어야 한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자. 그리운 곳으로 달려가자. 일제히 꽃을 피운 코스모스를 찾아오는 호박벌들의 나들이처럼,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자. 그리운 곳으로 떠나보자. 거기 있어라. 가을만큼 살이 찌고 있는 그리움이여.   
 
오석륜 시인·번역가/ 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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