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도 원·부자재 가격상승 탓에 식품 가격이 오르는 것으로 어느 정도 인지하고 이해할 텐데 정부가 식품업체들을 불러 모아 가격인상 억제를 압박하는 건 구시대적 발상 아닌가”
최근 정부가 식품업계를 향해 가격인상 자제를 요청한 것을 두고 한 전직 공무원은 이같이 평가했다. 지난 28일 농림축산식품부는 CJ제일제당, 오뚜기, 대상, 삼양식품 등 식품업체 임원진을 불러 놓고 물가안정 간담회를 열었다. 정부는 부당한 가격인상이나 편승인상 자제를 업계에 요청했다. 업계를 직접 불러 가격인상 억제 압박을 한 건 이번 정부 들어서 처음이다.
정부의 으름장에 부담스러움을 느끼고 있다는 게 식품업계 중론이다. 일부는 당혹스럽다고도 평가했다. 원부자재를 비롯해 전기료 등 공공요금까지 다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왜 식품업체만 가지고 이러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물가 관리에 실패한 책임을 기업들에게 돌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의 식품 가격 개입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정부는 최근 잇따른 식품업체들의 가격 인상을 고물가에 기댄 부당한 가격 인상, 편승인상으로 규정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식품물가 점검반을 통해 동향을 살피겠다고 했다.
정부의 규정처럼 고물가에 기댄 부당 인상이라면 주요 식품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을 살펴보면 된다. 식품업계의 영업이익률은 일반적으로 5% 안팎이다. 올해 2분기 기준 식품업계 1위 CJ제일제당의 영업이익률은 6.71%다. 전년 동기 대비 0.73%포인트 하락했다. 라면시장 1위인 농심의 영업이익률은 전년 동기 대비 2.1%포인트 하락한 0.56%다. 원부자재 가격 부담 영향이 이익률 하락에 영향을 줬다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식품업계가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된 가운데 앞으로가 더 문제다. 밀, 곡물, 팜유 등 원재료를 수입해 가공해야하는 식품업계 입장에서 현재 지속되고 있는 고환율 상황이 이들의 어려움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은 2009년 3월 31일 이후 13년 6개월만에 1420원대를 뛰어넘었다.
고환율 영향은 교역조건도 악화시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8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82.49로 1988년 1월 통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수출상품 한 단위 가격과 수입 상품 한 단위 가격의 비율이다. 우리나라가 한 단위 수출로 얼마나 많은 양의 상품을 수입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정부 눈치를 보게 된 당장 마케팅 비용을 줄여 감내하겠다는 게 식품업계 중론이다. 하지만 고환율 기조 속에서 식품업계가 감내할 수 있는 여력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대놓고 팔을 비트는 구시대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고환율에 비명 지르는 기업들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때다.
유승호 산업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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