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의 한 구절이다. 헤어짐, 이별을 섭리에 따라 수용, 순응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남양유업 경영권을 두고 벌인 한앤컴퍼니와의 법적 분쟁에서 패소했다.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는 한앤컴퍼니가 홍 회장과 가족들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양도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홍 회장측이 주장하던 쌍방대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송비용도 홍 회장측이 부담하도록 결정했다. 홍 회장의 완패였다.
홍 회장측은 패소한 즉시 유감의 뜻과 함께 항소 계획을 밝혔다. 한앤컴퍼니측이 쌍방대리를 사전에 동의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이에 관련한 증거를 내놓지 못했고 명백한 법률 행위를 자문행위라고 억지 주장을 했다는 게 홍 회장측의 주장이다. 홍 회장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이 주식매매계약 과정에서 홍 회장과 한앤컴퍼니 양측의 대리를 맡아 계약이 부당하다고 주장해왔다.
홍 회장은 재판부 판결에 대해 인정 대신 항소를 택했다. 홍 회장의 선택은 정답이었을까. 홍 회장의 항소가 아닌 인정을 택했어야했다. 땅으로 떨어진 명예를 챙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그간 홍 회장의 행보, 태도를 두고 몽니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불가리스 사태 책임을 지고 남양유업을 매각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던 홍 회장은 여전히 회장직을 유지 중이다.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장남인 홍진석 상무는 업무에 복귀했고 차남인 홍범석 외식사업본부장은 승진을 했다. 홍 회장은 한앤컴퍼니와 법적 공방만 이어가고 있다.
2심, 3심에서도 지금과 같은 판결이 나온다면 홍 회장과 그의 가족들은 남양유업 경영권을 잃게 된다. 최소한으로 남아있는 명예까지 실추돼 불명예 퇴진이 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홍 회장측의 패소를 높게 보고 있다. M&A 시장을 교란시키는 선례가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앤컴퍼니는 지난해 입장문을 통해 “M&A 시장에서 생명과도 같은 계약과 약속을 경시하는 선례가 생길 것에 대한 우려가 높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1심 판결이 나기까지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홍 회장측이 항소 의지를 밝히면서 소송은 장기전으로 흐를 전망이다. 기나긴 법정싸움으로 피해를 보는 건 결국 남양유업 임직원, 소액주주, 대리점, 낙농가 등이다. 지금은 항소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인정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불명예 퇴진으로 모든 걸 내려놓게 되거나 마지막 남은 한 톨의 자존심, 명예라도 챙길 수 있게 되거나, 그의 선택에 달렸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유승호 산업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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