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어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이후 ‘스토킹 범죄’에 대한 피해자 보호 제도 개선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정치권과 수사당국도 개선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스토킹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일상이 무너졌다”며 괴로움을 호소해 왔지만, 당국의 미흡한 대처 탓에 실질적 보호를 받지 못해왔다는 비판이 거셌다.
전문가들은 보복 우려가 있는 경우 신변안전 조치를 별도로 규정해 피해자 보호 조치를 강화하거나, 스토킹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규정하는 내용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의사 불벌죄를 폐지해 피해자에 대한 협박을 막는 방법도 제안한다. 현재 스토킹처벌법 18조 3항에는 ‘스토킹범죄는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돼 있는데, 이에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되레 협박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잠정조치 4호(유치장 구금)를 경찰 직권으로 시행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현재 잠정조치 4호는 스토킹 가해자를 구속영장 없이 최대 한 달까지 유치장에 구금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의 검토와, 법원에 청구 시행 등을 거친 이후에만 가능해 최소 4~5일은 필요하다. 스토킹범죄에 한해서는 절차를 생략하거나 사후 승인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신속하게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
제도 개선을 통해 그간 허점으로 지목됐던 부분이 채워지는 건 분명 환영할 만할 일이다. 하지만 ‘스토킹범죄’에 대한 인식 변화 없이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를 이룰 수 있을까?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좋아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건 구애 행위가 아니”라고 단언하며 “스토킹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돼, 가해자는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3000만원 이하에 처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가해자 대부분은 벌금형과 집행유예, ‘처벌 불원’에 따른 공소기각으로 풀려났다고 한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지 않은 것도 법무부의 안일한 인식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최근 일어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에 대해 어느 서울시 의원이 “좋아하는데 안 받아줘 발생한 사건”이라는 망언을 내뱉은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의 발언에는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탓하는 의도가 담겨있었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자 그는 곧장 사과했다. 하지만 애초 그가 당당히 이러한 발언을 내뱉을 수 있었던 건 여성의 ‘거부의사’쯤은 가뿐히 무시해도 좋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승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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