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빅블러 시대, 변해야 산다
2022-09-13 09:00:00 2022-09-13 09:00:00
우리나라에서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직전인 2008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스마트폰을 처음 봤다. 미국 뉴욕에서 사람을 찾아가는 미션이었는데, 현지 대학생들이 길을 헤매는 한국 연예인에게 '인터넷이 되는 핸드폰'으로 뉴욕 모처의 위치를 검색해 알려주는 모습이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 위치 검색이 일상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길거리에서 뭔가를 검색해서 타인에게 알려준다는 개념은 충격적이었다. 이듬해 국내 한 통신사를 통해 아이폰3GS가 첫 출시되고, 스마트폰을 처음 만져볼 수 있었다. 결국 굴지의 기업들도 스마트폰 개발에 나서게 된다.
 
당시 아이폰의 국내 출시가 지체된 이유는 '갈라파고스 규제' 탓이다. 국내의 낡고 비표준적인 웹 환경이 문제였다. 한국형 무선인터넷 표준플랫폼, 공인인증서 사용, 액티브엑스 등을 의무화한 것이 스마트폰을 담기엔 역부족이었고, 해외에서 난리라던 스마트폰을 1년 넘어서야 사용해볼 수 있게 된다.
 
산업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Big Blur) 기류가 본격적으로 일고 있다.  최근 금융규제 혁신을 위한 여러가지 규제 완화 방안들이 언급되고 있는 가운데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에 대한 요구 수위도 높아졌다. 가장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금융권에서 이 같은 전향적인 모습은 출입 기자로서 처음 접하기도 한다.
 
출범 5년차를 맞은 인터넷전문은행은 금융권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출범 초반에 시중은행의 '2중대'가 될 것이는 우려를 불식하고, 생활 금융을 정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개인신용대출 중심에서 주택담보대출과 개인사업자 대출까지 영역을 급속히 확장하면서 기존 은행권의 가계대출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급기야 당국은 네이버, 카카오 등의 플랫폼에서 대출 뿐 아니라 예금, 보험, 온라인투자연계(P2P) 등 다양한 상품을 비교·추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시범 허용하기로 했다. 금융사는 상품 제조만 하고, 판매는 빅테크가 하는 식으로 금융사와 소비자간의 판매 채널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기성 금융사들은 이런 흐름에 불만을 갖는 모양새다.  정부(금융당국)가 빅테크에 너무 많은 특혜를 밀어 주는 게 아니냐고 토로한다. 의무는 피하면서 전통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전통 금융사들이 거미줄 규제에 얽매여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불만도 이해가 된다. 의무는 피하면서 전통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권 운동장 바로잡기가 기성 금융사들의 밥그릇 지키기로 끝나선 안 된다. 양질의 서비스 제공과 금융사 지속성을 위해선 혁신이 필수적이다. 경쟁자 억누르기에만 집중한 채 혁신 없이 안주하는 건 곤란하다.
 
기성 금융사와 빅테크 모두 우리나라 금융 산업 경쟁력 제고 전면에 나설 대표들이다. 치열한 경쟁은 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하지만, 단순 영역 싸움에 그친다면 혁신은 없다. 금융 생태계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급변하는 시장에 비해 자구노력을 얼마나 선행했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지금처럼 플랫폼 시장의 점유율을 차지하기 위한 밥그릇 싸움만으로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금융소비자들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획가 더 늦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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