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사전과 친숙해지자
2022-09-06 06:00:00 2022-09-06 06:00:00
일상에서 사전과의 간격이 멀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사전을 거의 찾지 않는다는 뜻이다. 안타깝다. 종이사전이건 인터넷 사전이건 사전 찾는 일에 인색하다. 이대로 가면 종이사전은 사라질 운명을 맞을지도 모른다. 기우가 아닐 것이다. 사전이란 존재의 값어치가 점점 상실해가는 세상을 살고 있다. 
 
누군가는 왜 지금, 뜬금없이 사전 이야기를 꺼내는가 할지 모르겠다. 작금에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해력 저하’와 일정 부분 연관을 맺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된 표현인 ‘심심한 사과’에 주목해보자. 어느 콘텐츠 전문 카페가 한 웹툰 작가 사인회의 예약 오류에 대해 사과하면서, “예약 과정 중 불편 끼쳐 드린 점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드립니다”라는 공지 글을 올리자,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심심한 사과? 진짜 XXX들 같다.”, “이것 때문에 더 화나는데 꼭 ‘심심한’이라고 적어야 했나”라는 등의 격한 반응이 이어졌다.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로 ‘심심한 사과’가 등장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심심(甚深)’은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함’이란 뜻이다. 그런 마음을 담아 사과를 한 것인데,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사과’로 받아들인 것. 문해력의 저하가 불러온 촌극이다. 지난 5월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 결과를 보면, 한국의 문해력은 최하위권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무서운 일이다. 
 
단어의 뜻을 잘 모르면 사전을 찾아보면 간단히 해결된다. 살아가면서 모르는 단어를 접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 문제는 단어를 모르는 것보다 단어를 찾지 않는 행위다. 해결 방법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단어를 찾는 일, 그런 행위를 계속하면 자신의 언어가 확장된다. 언어의 확장은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사고의 확장은 새로운 창조로 이어지는 힘을 가진다. 언어는 그렇게 무한한 생명력을 지닌 고귀한 것이다. 인류가 선물 받은 중요한 재산인 언어를 왜 등한시 하는가. 
 
사전은 정확한 뜻과 다양한 의미와 마주할 수 있다. 사전은 단어를 몰라서 찾는 경우에만 국한된 도구가 아니다. 잘 활용하면 좋은 스승이 된다. 한 단어에 엄청나게 많은 뜻이 있는 경우에는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재미있는 공부, 훌륭한 독서가 된다. 단어 하나에 펼쳐진 다양한 뜻을 읽다 보면, 단어가 제공해준 상상의 바다가 가슴속에 출렁거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거기에서 창작의 재료도 생긴다. 사전이 삶의 동반자가 되는 경험은 그렇게 촉발된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제목을 ‘사전과 친숙해지자’라고 붙였다. 사전이라는 말에 괄호를 하고 한자를 넣지 않았다. 사전은 두 개의 한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전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말을 찾는 사전’으로 이해한다. 이때의 한자는 ‘辭典’. 그러나 사전은 다른 한자를 쓰는 것이 있다. ‘사전(事典)’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의 ‘辭典’은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으로, 국어사전, 영어사전 할 때의 그 개념이다. 후자의 ‘事典’은 여러 가지 사항을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고 그 각각에 해설을 붙인 책을 가리킨다. 백과사전이 그 예에 해당한다. 역시 이 두 개의 ‘사전’의 의미를 모르면 사전을 찾아보면 될 일. 
 
나는 평소 누구보다 사전을 자주 찾는다. 아직도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고, 번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도 주위 사람들에게도 사전을 찾으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정확한 뜻을 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평소 궁금증을 가졌던 것을 알기 위해서도 이런저런 사전을 통해서 갈증을 해소한다. 지식을 얻었다는 기쁨은 즐거운 수확이다. 그럴 때는 사전은 삶의 동반자다.  
 
한자의 경우는, 한자사전에서 부수를 통해, 또는 전체 획수를 통해 찾을 수 있지만, 이제는 ‘한자 필기 검색 사이트’에서 직접 써서 그 뜻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만큼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편리한 사전의 기능을 얼마나 활용할까. 덧붙이면, 만일 한자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면, 그 거부감을 없애고 친숙해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말 단어의 7할 정도는 한자어가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정확한 뜻과 다양한 의미를 알려주는 사전의 기능을 적극 활용하자.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다. 그런 습관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전과의 간격이 가까워질수록 문해력도 향상된다.      
 
오석륜 시인·번역가/ 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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