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으로 치닫던 '경찰국 신설 사태'가 벼랑 끝에서 일단 멈췄다. '14만 전체 경찰회의' 개최를 제안했던 경찰간부가 27일 전격적으로 자진 철회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이날 아침 출근길에 "모든 오해와 갈등을 풀고 국민만 바라보는 경찰이 되기 위해 저와 14만 경찰이 합심해야 할 때"라고 화답했다. "내부 일을 정치 이슈화 하지 말자"는 뼈있는 말도 있지 않았다.
사태는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위태로운 평화가 과연 얼마나 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일선 경찰은 이번 사태를 야당의 힘을 빌려 헌법재판소로 가져가려는 모양이다. '검수완박'을 반대하며 이미 국회와 법정싸움을 하고 있는 검찰과 함께, '경찰국 신설'에 반발하는 경찰이 대통령을 상대로 송사를 벌일 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례가 없는,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경찰국 사태'의 뿌리는 '검수완박 사태'다. 워낙 졸속으로 처리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안전장치인 '경찰권 통제'를 나몰라라 한 것이 결국 이 사달을 냈다.
두 사태의 전반적인 전개 과정도 판박이 수준이다. 특히 절차적 흠결 문제가 많이 닮았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경찰국 신설'의 법적 근거를 대통령령에 둔 것은 아무래도 절대 다수인 야당의 비토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로 밖에 안 보인다. 정부조직법 34조는 경찰청의 조직·직무범위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숙고와 충분한 소통 없이 속전속결로 법령을 통과시킨 점도 그렇다.
이 장관이 전면에 나서긴 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경찰을 대하는 당정의 태도는 참으로 야박하다. 경찰을 '시범 케이스'로, 새정부의 령을 세워보려 한 것이겠으나 거칠고 투박한 솜씨만 들통이 났다. 당장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해보자고 모인 총경들을 감찰하고 제안자를 대기발령 조치한 것이 그렇다.
이 장관이 지난 25일 출근길에 총경회의를 "12·12 쿠데타에 준하는 상황"이라고 빗댄 것은 더욱 뜨악하다. 발언의 파문이 확산되자 긴급 브리핑까지 열어 경찰국 신설의 진의를 설명한다고 나섰지만, 국민들의 눈과 귀는 이미 '쿠데타'에 집중된 뒤였다. 이 장관 스스로 본질을 호도한 것이다. 국민적 공감을 얻기는 커녕, 경찰국 신설에 긍정적이었던 경찰 내부 여론도 완전히 돌아섰다. 뒤늦게 '쿠데타 발언'이 지나쳤다고 사과했지만 만시지탄이다.
특히나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던 윤석열 대통령이 일선 경찰의 모임을 두고 '중대한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한 것은 실망스럽다. "국민혈세로 월급 꼬박꼬박 받는 이들의 배부른 밥투정"이라고 평가한 권성동 여당 원내대표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모두 '나라의 어른'들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듯 하다.
불과 2년 전, '추-윤 갈등' 당시 문재인 정부가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이유는 앞뒤 없이 '검찰 때리기'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검찰개혁은 미봉책으로 끝났고 국민은 직전 검찰총장을 다음 정부 대통령으로 뽑았다.
되풀이 되는 역사 앞에 "전 정부도 그랬다"는 식의 항변은 통할 수 없다. 국민이 새 정부를 선택하는 이유는 전 정부의 과오를 답습하지 말라는 것이다 .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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