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학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평소 시를 쓰는 시인의 입장에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인데, 최근 한국인 최초로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Fileds Medal)’을 수상(2022년 7월5일)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그와 관련한 언급을 하였기에, 인용하여 그 속살을 들여다보고, 함께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수학은 자유로움을 학습하는 일”,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언어로 소통하는 시도가 시라면, 땅으로 끌어내리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을 수와 논리로 표현하는 것이 수학”, “인생도, 수학도 성급히 결론 내지 마세요”, “수학은 저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가는 과정”.
우선, 수학 학자가 한 말에 사람의 향기가 난다. 적잖이 공감이 가서,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와 수학의 공통점, 혹은 그 각각의 특징을 제대로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말들을 종합해서 하나의 명제로 정의한다면, ‘시와 수학은 예술의 영역에서 같이 호흡하는 존재’가 어울릴 듯.
특히, “수학은 자유로움을 학습하는 일”은 “시는 자유로움을 학습하는 일”로 치환이 가능하다. 역시, “수학은 저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가는 과정”은 “시는 저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가는 과정”으로 바꾸어 서술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무엇보다, “인생도, 수학도 성급히 결론 내지 마세요”는 시와 수학이 우리의 삶이나 살아가는 방식과도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문장이기에 읽는 이의 가슴에 거부감 없이 흡인된다.
이처럼 앞에서 서술한 허준이 교수의 말들이 공감을 수반하는 것은 아마도 그가 기형도 시인의 작품을 무척 좋아해, 어릴 때 시인을 꿈꾸던 문학 소년이었다는 이력과도 깊은 관련성을 갖는다고 보인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소년이 세계적인 수학 학자가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역으로 얘기하면, 수학 학자를 꿈꾸던 소년이 후에 시인이 됐더라도 이러한 발언은 같은 값어치로 우리들에게 전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평소, 나는 ‘시인’과 ‘수학자’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공통분모가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 하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정답으로 규정하는 과목이 수학이기에 시와 수학은 서로 대척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수학은 자유로움을 학습하는 일”이라니, 정신이 번쩍 든다.
문득, 오로지 정답만을 강요받으며 수학 문제를 풀어야했던 우리의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심지어 국어 시험에 시 감상과 관련된 문제가 출제되면, 그것 역시 오로지 정답 하나만 인정받던 때였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만 했다. 아니, 그것은 2022년을 살고 있는 현재의 학생들에게도 진행형이다. 시를 감상하는 문제도 정답 하나가 아니면 다른 것은 다 틀렸다는 판정. 그 정해진 틀에 우리는 모든 사고를 끼워 맞추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이번 기회에 한 번 더 되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하루속히 그 개선책을 제시해야 한다.
심지어 대학입시에 시 문제가 출제된 경우, 그 시를 직접 쓴 시인이 해당 문제를 풀었을 때 제대로 답을 맞추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일이 회자된 적이 있었다. 그런 현실을 감안하면, 시는 결코 자유로움을 학습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상상력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역기능이 발생하고 있는 것.
좀 더 생각을 확장하면, 이학 분야에서 수학만이 자유로움을 학습하는 것은 아니다. 수학만이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아니다. 물리학, 화학, 천문학, 생물학, 지질학 등의 자연 과학도 같은 시각을 반영하지 않을까. 수학 학자가 풀리지 않은 난제를 풀기 위해 상상의 유영(遊泳)을 펼치는 과정을 ‘자유로움을 학습하는 일’이라고 했을 것이다. 문제를 하나씩 해제하는 과정이 마치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가는 과정’으로 여겼을 터.
‘자유로움’과 ‘상상’, 그리고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가는 일’, 이런 핵심어가 서로의 온기를 품고서 ‘아름다운 세상’을 지향한다면, 시와 수학은 예술의 영역에서 같이 호흡하는 존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밖에서는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계속된 가뭄으로 쌓인 갈증을 풀려는 사람도 자연도 서로를 아름답게 품고 있다. 젖어가는 존재들이 빚어내는 소리가 행복한 음악으로 들려온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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