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만 하는 거면 이렇게 바쁘진 않아요. 갑작스런 일들이 많이 터지죠. 부처 전화 한 통이면 하던 일은 당장 중단하고 새로운 일에 전력투구해야 해요. 대개 업무와 무관한 일입니다."
한 정부부처 산하기관 직원의 말이다. 하던 주요 업무를 그만두고 급선회해 엉뚱한 일을 할 때가 꽤나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한 기관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부처 산하기관 직원들을 만날 때면 으레 가장 많이 들리는 불만이다. 상사 위에 또 다른 상사를 둔 정부부처 산하의 기관들은 남모를 고충이 더 많다.
모든 기업과 기관이 그렇듯, 각자의 주요 업무가 있게 마련이다. 시의적절하게 때가 되면 해야만 하는 일과 역할이 있다. 하지만 산하기관은 부처의 전화 한 통이면 주요 업무는 뒷전으로 밀린다. 준비해오던 일을 제때 마감하지 못하면서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자신이 하는 일에 자괴감을 느끼는 직원도 봤다. 부처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때로 불합리한 업무에 자신을 시쳇말로 '갈아넣다보면' 산하기관의 한계를 느낀다는 이들이 많다.
한번은 보도자료로 고민하는 직원을 봤다.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를 배포해서 언론에 기사를 실리게 하는 것이 '난제'라고 했다. 전문 영역의 산하기관이 내놓는 자료는 대중을 대상으로 하지 않아 널리 보도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주무부처는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보도 횟수로 다그치며 역량과 능력을 운운했다. 보도가 되느냐 안되느냐, 이들에겐 큰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택한 방법은 '돈'이었다. 이 산하기관은 이름 모를 중간 브로커를 통해 기사 게재를 요청하고 있다. 많게는 100만원이 넘는 돈을 지급하면 이 브로커가 친밀한 관계를 유지 중인 언론사 8곳 정도를 활용해 자료를 배포하는 식이다. 언론사를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이 산하기관은 이 브로커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했다. 기자가 의아함을 표하자 무엇이 잘못됐느냐며 고마운 분이라는 말만 거듭했다.
산하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잡다한 일에 치이고 부처의 눈치만 살피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면서 산하기관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면 이는 더 큰 문제다. 산하기관은 정부부처에 속한 기관이지만 전문성을 지닌 만큼 업무와 지시가 상하 수직관계 일변도로 흐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부처의 전화 '한 통'에 난리가 나는 일은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변소인 중기IT부 기자(byl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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